울산 앞바다 고래V 구조(동해-1)에서의 ‘경제성 있는’ 가스전 발견은 석유와 가스를 찾아내려는 숱한 도전과 좌절 끝에 일궈낸 결실이다. 30년간 시추만 30여 차례. 더러 가스를 발견하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경제성 없음’이라는 결론에 부닥칠 때마다 들었던 답답증도 이제 훌훌 털어버리게 됐다.
▽‘동해-1’ 발견〓98년 7월 울산 남동쪽에서 약 60㎞ 떨어진 6-1광구 고래V 구조에서 작업 중이던 시추선 두성호 선상.
해저로 연결된 가스관의 불길을 지켜보던 ‘시추 베테랑’ 부범석(夫範錫·50)석유공사개발사업처장의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가스를 발견하면 최소한의 매장량 확인을 위해 지하에 가스관을 뚫어서 2주일 가량 태워보는 테스트를 하죠.”
2주간 불길은 꺼지지 않았지만 7, 8번이나 가스를 발견하고서도 포기해야 했던 기억이 있었기에 부범석처장은 마음을 놓지 못했다.
정확한 매장량 확인을 위해 99년 3∼6월 2개 공을 더 뚫은 뒤 경제성을 확인하고 나자 비로소 부처장의 얼굴에는 미소가 흘렀다.
고래V 구조는 7월까지 사전조사에 들어가 가스채굴을 위한 기본계획을 확정하고 2001년 3월까지 환경영향평가를 완료하게 된다.
이어 9월부터 2001년 2월까지 생산설비 기본설계를 마치고 2001년 4월부터 2002년 6월까지 생산설비 제작 및 건설을 한 뒤 2002년 6, 7월경 시운전과 함께 드디어 생산개시에 들어간다.
정부는 생산된 가스를 울산과 경상도 지역에 15년간 공급할 계획이다.
▽60년 에너지 도전사〓동해-1은 ‘60년 도전과 실패, 다시 도전’ 끝에 얻어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석유 채굴에 나선 것은 민간인들에 의해서였다. 일제시대인 39년 진주 진천에서 석유광구를 출원해 지하 20m를 뚫었으나 아무런 실적이 없었다
정부가 본격적으로 석유개발에 나선 것은 70년대초. 중동 산유국들의 석유 무기화로 우리경제가 큰 쇼크에 빠지자 정부는 ‘에너지 자주권’ 확보에 나섰다.
7개 해저광구가 설정돼 대대적인 시추를 벌였다. 자금능력이 빈약하고 기술이나 경험이 없어 전적으로 외국 회사에 의존해야 했었지만 외국회사들의 소극성 등으로 별 소득이 없었다.
때론 의욕이 지나쳐 코미디를 연출하기도 했다.
75년에 정부가 “포항지역에서 석유가 발견됐다”고 떠들썩하게 발표해 국민을 흥분시켰지만 얼마 뒤 ‘없던 일’로 돼버렸다.
2차 오일쇼크 직후인 78, 79년 정부는 동력자원부와 석유개발공사를 잇따라 설립해 독자적인 에너지 탐사에 나섰다. 지금까지 뚫은 시추공수는 34개. 9개 공에선 가스를 발견했으나 경제성이 없어 포기해야 하는 안타까운 과정이 되풀이됐다.
<이명재기자>mj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