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최현만(崔鉉萬)e*미래에셋대표는 상기된 얼굴로 서울 여의도 증권거래소 기자실을 찾았다. “위탁수수료를 0.5%에서 0.29%로, 사이버거래수수료는 0.1%에서 0.029%로 내리겠습니다.”
수수료 파괴를 선언한 ‘증권시장의 한국판 빅뱅’은 이렇게 막을 올렸다.
▼투자자 망해도 돈방석▼
▽카르텔의 파괴〓요즘 증권가 최대의 ‘화두’는 수수료 인하. 사이버거래 비중이 폭발적으로 커지고 인터넷증권사가 등장하면서 수수료는 자동적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돼 왔다. 하지만 누구도 이렇게 빨리 닥쳐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 하는지’ 서로 눈치만 살핀 셈.
LG투자증권이 지난주 위탁수수료를 0.05%포인트 떨어뜨리며 선수를 치자 미래에셋이 즉각 ‘뇌관’에 불을 댕긴 것.
▽영업직원들의 ‘저항’〓당장 영업점 직원과 증권사 사장단의 항의가 빗발쳤다. 각종 증권사이트에는 미래에셋이 ‘물귀신 작전’을 편다며 비난하는 글이 빗발쳤다.
그러나 수수료 인하를 주도한 박현주(朴炫柱)미래에셋자산운용사장은 “증권사 지점장과 사장단, 증권주 투자자들은 비난의 목소리를 냈지만 개미투자자들로부터는 ‘고맙다’는 격려전화가 쇄도했다”고 전했다.
지난해 증시 활황으로 혜택을 가장 많이 본 사람은 증권사와 증권사 영업직원들. 개미는 멍들어도 증권사들은 올 3월결산 때 2조7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낸다. 영업실적을 올리기 위해 사고 팔고를 반복해 분기마다 억대의 성과급을 받아가는 직원들이 수두룩하다.
증권사들은 ‘분기에 억대 샐러리맨’이라는 소문이 날까봐 쉬쉬한다. 투자자들은 돈을 못버는데 영업직원들이 억대 성과급을 챙긴다는 사실이 알려질 때 투자자들의 반발이 두렵기 때문. 증권사들이 약정 경쟁에 열을 올리고 막대한 인센티브로 직원들을 부추기는 사이에 투자자들 주머니는 헐렁해지는 꼴이다.
▼성과급제 격변예고▼
▽‘투자자 입장에 서겠다’〓수수료 인하를 주도한 미래에셋 경영진은 영업점 직원 출신의 샐러리맨.
박현주사장은 동원증권 압구정지점장, 최현만대표는 서초지점장이었다. 증권사의 수입구조와 약정 실태를 잘 알고 있는 두 사람은 이제 투자자 입장에 서지 않으면 증권영업을 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수수료 수입이 증권사 전체 수입의 70%를 차지합니다. 제가 동원증권 압구정지점에서 증권영업을 계속 했다면 지난해 받은 인센티브가 500억원을 넘어설 겁니다.”
박사장은 현재 증권사 영업직원의 인센티브 구조가 ‘땅 짚고 헤엄치기’라고 표현한다. ▽긴장감 감도는 증권가〓여의도 증권가는 미래에셋의 모험(?)을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회의를 열어보지만 자칫 공멸의 길로 들어설까봐 섣불리 따라가지도 못한다.
한 증권사 사장은 “수수료 수입이 절대적인 상황에서 미래에셋을 뒤따라 갔다간 감당할 수 없다”고 털어놨다. 자칫 손해보고 장사하는 꼴이 된다는 것. 몸집이 이미 커질 대로 커진 대형사일수록 고민도 더 크다. 일단은 차별화된 서비스로 대응하겠다는 정도.
▽전쟁은 이제부터〓수수료 전쟁은 이제 겨우 시작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 미래에셋은 출범 당시 수수료를 전혀 받지 않는 수수료 ‘제로’ 전략까지 고려했다.
“증권사들이 수수료를 안내린다고요? 우리는 더 떨어뜨릴 각오가 돼 있습니다.”
미래에셋의 공격적인 경영으로 투자자들은 갈수록 유리해지는 반면 증권사들은 적자생존의 정글에서 쫓고 쫓겨야 하는 치열한 생존경쟁을 시작했다.
<최영해기자>money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