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대권다툼' 역사]98년 투톱체제…몽헌씨 그룹'얼굴' 부상

  • 입력 2000년 3월 25일 00시 20분


현대의 ‘후계 대권’을 잡으려는 형제간의 레이스는 동생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아버지의 얼굴(MK)과 왕발(MH)을 빼닮은 것부터 경쟁을 벌이는 듯 했던 두 사람은 아버지와 현대의 ‘법통(法統)’을 놓고 수년간 물밑 혈전을 벌였다.

두 사람간에 외형상 경쟁 체제가 가시화된 것은 98년초 정몽헌회장이 그룹의 공동회장으로 취임하면서부터. 96년초 삼촌 정세영회장이 물러나면서 정몽구회장이 그룹회장에 오른 지 2년만이었다.

재계에서는 전례를 볼 수 없던 ‘투톱체제’였다. 그러나 한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수 없듯이 아버지의 최종 낙점을 받기 위해 이때부터 두 형제는 양보없는 싸움에 들어갔다.

현대그룹 안에는 ‘두 개의 태양’을 따라 긴 줄이 늘어섰다. 경복고-한양대(MK), 보성고-연세대(MH)의 회장 출신학교 등을 따라 간부들은 MK라인, MH라인으로 분류됐다.

‘주군’의 위상에 따라 운명이 달라지는 가신들의 경쟁은 더욱 치열한 ‘권력투쟁’을 불렀다. 특히 투박한 성격의 용장(몽구)과 치밀한 지장(몽헌)인 두 형제의 대조적인 성격도 더욱 흥미를 자아냈다.

두 형제가 그룹 내에서 걸어온 길도 사뭇 다르다. 둘 모두 30대 중반에 경영 일선에 나섰지만 몽구는 ‘빛이 안나는’ 사업을 주로 해왔다. 74년 현대차써비스를 처음 맡은 몽구회장은 이후 현대정공 강관 산업개발 인천제철 등을 잇따라 자신의 몫으로 가져왔다.

몽헌은 10년 뒤인 84년 현대전자를 설립하고 반도체산업에 뛰어들면서 경영자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반도체 부문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 아버지로부터 수완을 인정받았다.

97년에는 형이 관장하던 현대종합상사를 자신의 휘하로 가져오기도 했다.

98년초 공동회장 체제가 출범한 이후 무게추는 몽헌 쪽으로 기울어진 듯했다. 몽헌은 그룹에서 비중있는 건설과 전자 등 확실한 계열사를 맡은 반면 몽구는 비주력인 현대정공 현대차써비스 경영에 만족해야 했다. 특히 98년부터 시작된 금강산 개발 등 대북사업에서 몽헌은 최고사령탑을 맡아 그룹의 ‘얼굴’로 떠올랐다.

밀리는 듯 했던 MK가 균형추를 잡은 결정적인 전기는 98년 자동차 부문의 접수. 그룹에서 가장 덩치가 큰 자동차를 장악함으로써 재산분할 구도에서 동생과 대등한 위치에 올랐다.

그러나 금융까지 장악해 명실상부한 ‘장자’의 위상을 세우려던 MK측의 의도는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이명재기자>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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