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환율하락 개입놓고 엉거주춤…금리-물가 영향 고심

  • 입력 2000년 3월 26일 19시 57분


국제유가 급등 등 해외 악재에도 불구하고 올들어 줄곧 호조를 보여온 핵심 경제지표간의 연결고리가 최근 며칠간의 가파른 원화가치 강세(원-달러환율 하락)로 균열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당국은 환율하락을 막기 위해 시장개입에 나서자니 저금리 저물가 기조를 흩뜨리지나 않을까 걱정이고 그대로 놔두자니 국제수지에 미칠 악영향을 감수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 상황. 전문가들은 “저물가 저금리 고성장과 국제수지 흑자 등 좋은 것은 모두 챙기겠다는 식의 발상이 갖는 모순이 환율불안을 통해 일부 드러난 셈”이라며 “경제정책의 방향과 틀을 다시 한번 점검할 때가 됐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물가냐 환율이냐’ 당국의 딜레마〓재정경제부 관계자는 “환율을 현 수준에서 유지하려면 국책은행을 통해 시장에서 달러를 사들여야 하는데 마땅한 자금마련 수단이 없어 고민”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직접적 개입에 발목을 잡는 것은 달러흡수를 위해 돈을 찍을 경우 곧바로 금리 및 물가상승으로 이어진다는 점. 외국환평형채권 1조원어치를 발행키로 했다가 행동에 옮기지 못하고 있는 것도 외평채 발행이 채권공급 물량을 늘려 장기금리 상승을 부추길 가능성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최근 정부가 올해 소비자물가상승률 목표치를 당초의 3%에서 2.5%로 의욕적으로 낮춰잡으면서 환율정책과 관련된 운신의 폭은 더욱 좁아졌다. 외국계 은행의 한 외환딜러는 “정부가 물가안정을 강조하면 외환시장에서는 환율추가 하락을 시사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구리 알루미늄 등 주요 원자재 가격이 오름세를 지속하는 가운데 상당수 민간연구소와 외국계 금융기관들이 올해 성장률을 8%대로 높게 보고 있는 것도 거시경제 정책의 부담으로 작용하는 양상. 성장률이 높아지면 물가상승 압력이 그만큼 커지기 때문.

▽경기속도조절론 대두〓정부는 환율하락 외에는 아직 경제지표상의 이상징후가 없으므로 최소한 상반기까지는 현재의 기조를 그대로 이어간다는 입장.

문제는 현재의 환율추이가 우리경제의 기초여건(펀더멘털)을 반영했다기보다는 투기적 성격의 단기자본이 상당수 포함된 외국인 주식투자자금의 유입이 급증하면서 생겨난 현상이라는 점. 이에 따라 정부 내에서도 대외균형 붕괴와 이에 따른 거품발생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환은경제연구소 신금덕(辛金德)동향분석팀장은 “현재의 경기상승 속도가 적절한지 거시경제정책 전반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완만한 긴축을 통해 경기를 연착륙시키는 쪽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고 진단했다.

<박원재기자> parkwj@donga.com

▼적정 환율 수준은…▼

우리 경제에 주름살을 주지 않는 적정 환율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무역업계는 연평균 환율이 1120원은 되어야 채산을 맞출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부와 주요 민간경제연구소들도 물가안정과 경기과열 방지 등 경제지표를 종합적으로 감안할 때 연평균 환율은 1120∼1170원이 적절하다고 보고 있다.

▽비상 걸린 수출업계〓무역협회가 최근 131개 수출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적정환율은 1206원, 무역업체의 손익분기점이 되는 환율은 1120원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대로라면 24일 종가가 1108.70원이므로 중화학업종만 빼고 모든 업종이 손익분기점 밑으로 떨어져 수출을 할수록 적자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린 셈. 한국은행은 원-달러 환율이 1% 떨어질 때(절상될 때) 무역수지는 5억달러 내외 줄어든다고 분석한다. 다만 우리 수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엔-달러 환율이 최근 106∼107엔에서 횡보를 하고 있어 수출업계가 마지노선으로 보는 원화 대 엔화의 비율 1대 10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다.

▽앞으로가 문제〓한국은행이 흑자규모 115억달러, 경제성장률 7.2%, 물가 3.1%를 전망할 때 전제로 한 연평균 원-달러 환율은 1120원. LG경제연구원은 적정환율을 1121원으로 분석했으며 삼성경제연구소는 1100원 선으로 내다봤다.

LG경제연구원 이창선(李昌宣)책임연구원은 “3월까지 평균환율은 약 1120원으로 아직 적정 수준 범위 내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환율이 앞으로 더 떨어질 가능성이 높아 흑자기조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엔-달러 환율이 현 수준에서 5% 정도 상승하고 수출단가 하락 등 교역조건이 악화되면 적정환율은 1170원까지는 상승해야 한다”는 것이 LG경제연구원의 고 분석.

삼성경제연구소 권순우(權純宇)수석연구원은“원-달러 평균환율은 상반기 중 1100원 밑으로 떨어지고 하반기에는 1000원대 후반에서 안정될 전망”이라며 “물가안정을 고려하면 1100원까지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더 떨어지면 경제운용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박현진기자> 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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