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왕자의 난'일단락] 王회장 '13일간 내분' 일단락

  • 입력 2000년 3월 27일 20시 12분


“끝났어. 모든 게 끝났어.”

27일 정주영(鄭周永)명예회장이 몽구(夢九) 몽헌(夢憲)회장과 그룹 사장단 앞에서 몽헌회장이 후계자임을 분명히 하자 현대자동차의 한 임원은 어깨를 늘어뜨린 채 허탈하게 말했다. 왕회장의 막강한 영향력이 다시 한번 입증된 순간이었다.

그룹측은 이날 발표로 13일간의 내분은 일단락됐다고 보고 사태수습에 전력을 기울이는 모습.

▼MK 재반격 힘들듯▼

▽정말 끝났나〓‘왕회장’이라는 별칭 그대로 그룹내에서 절대적 존재인 왕회장이 직접 나선 이상 현대내분은 일단락됐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몽구회장 자신이 공개리에 이를 인정했기 때문에 이를 다시 뒤집기는 어렵게 됐다. 지금부터는 “아버지가 허락했다”며 왕회장이 사인한 문서를 흔들며 어떤 행동을 해도 아무도 몽구회장을 믿지 않게 된 것. 현재까지 상황으로 봐서는 왕회장은 유언장에서도 몽헌회장에게 힘을 몰아주도록 지분을 정리해 놓은 것으로 유추된다.

다만 왕회장의 유언장이 공개되기 전이나 혹은 현대 각 계열사의 왕회장 지분이 명확히 정리되기 전에는 불씨가 완전히 꺼졌다고 말하기 어렵다. 만약 몽헌회장이 어느 순간 아버지의 신임을 잃게 될 경우 후계구도를 둘러싼 내분은 언제 다시 불붙을지 모른다.

▼MK측 회의녹화 묘수▼

▽몽헌측의 절묘한 해법〓몽헌회장은 26일 오후 10시40분 성북동 자신의 집 앞에서 취재기자와 만나 자세한 언급은 회피한 채 “내일 모든 것이 잘 풀릴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몽헌회장측이 선택한 묘수는 ‘사장단 앞에서 왕회장이 몽헌회장의 손을 들어주고 몽구회장이 이를 인정하는 장면’의 연출. 몽헌회장측은 치밀하게도 이 장면을 녹음 녹화해 보도진에게 공개하기까지 했다. 왕회장이 기자들과 직접 만나 껄끄러운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 상황을 피하면서도 ‘대국민 발표’라는 효과를 얻는 방법을 생각해낸 것. 왕회장의 발언내용도 읽어보면 사장단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기자들에게 하는 말임을 알 수 있다.

▽수습에 들어간 현대〓김재수구조조정본부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안정’‘수습’이라는 단어를 여러번 사용했다. 이번 사태를 야기한 몽구회장측의 참모들에 대한 인사문제와 관련해서도 “그룹의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결정하겠다”고 말해 ‘숙청’보다는 ‘안정’쪽에 무게를 두는 모습이 역력했다.

몽헌회장도 27일 예정됐던 기자회견을 일주일 뒤로 연기했다. 땅에 떨어진 현대의 이미지를 획기적으로 개선시킬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한 뒤 발표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몽헌회장은 이 자리에서 현대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 야심찬 포부를 밝히고 투자자들로부터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현대의 주가를 올리기 위한 획기적인 대책도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4문장 읽는데 2분걸려▼

▽왕회장의 건강은〓김본부장은 기자간담회에서 “명예회장의 건강은 명백히 양호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몽구회장측이 26일 기자들에게 제시한 명예회장의 사인이 담긴 서류(24일 구조조정본부 발표를 백지화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고 군색한 답변만을 반복했다. 결국 김본부장의 답변은 명예회장이 사인을 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시인한 것으로 명예회장의 건강이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의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근거를 제공한다.

그룹측이 공개한 왕회장의 발언장면 녹화테이프를 보더라도 왕회장의 건강이 썩 좋지않은 상태임을 알 수 있다. 네 문장으로 이루어진 발표문을 말하는데 왕회장은 약 3분이 걸렸다. 사실 자식들이 왕회장의 건강이 양호하다고 판단했다면 이번 내분은 일어나기도 어려웠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이병기·박중현기자>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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