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원한 ‘화학적’ 결합〓지난해 1월 기업금융에 강점을 갖고 있던 장은은 국민은행에 합병 당하기 직전 명예퇴직 등으로 전체 1000명 중 260명 정도를 털어냈다. 그러나 합병 이후에도 비슷한 인원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 현재 국민은행 내엔 500명 안팎의 장은 출신들만이 남아있다. 반면 국민은행 출신은 1만명이 넘어 장은 출신들의 소외감은 상당히 크다. 김상훈신임국민은행장은 사석에서 “귀중한 인적자원을 잃었다”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하나은행에 흡수된 옛 보람은행 출신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 보람은행에서 잘나가던 K차장은 합병 후 이미 서울지점→지방지점→서울본점 등으로 3차례나 자리를 옮겨다녔다. 임원진에서 보람은행 출신들이 수적으로 밀리면서 고위간부 승진에서 ‘물먹을 것’이란 우려가 팽배하다.
76년 신탁은행과 서울은행이 합쳐 탄생한 서울신탁은행 인사부에는 두 은행출신들이 비슷하게 포진, ‘화학적 결합’의 어려움을 여실히 보여줬다. 서울은행의 P과장은 “천문학적인 부실로 위탁경영을 해야 하는 처지에 빠진 뒤에야 줄서기 문화가 사라졌다”고 털어놓는다.
▽전산시스템은 ‘승자의 몫’(?)〓힘이 비슷하다면 은행간 합병에서의 주도권 싸움은 전산분야에서 가장 극명하게 나타난다. 어떤 시스템을 채택하느냐에 따라 ‘어느쪽 인력이 보따리를 싸야 하느냐’가 결정되기 때문. 그러나 ‘점령군’이 워낙 강하면 전산체계도 그 쪽 것을 따라가게 마련.
장은은 합병 전 계정계 정보계 여신관리계 관리회계 등을 망라해 첨단 전산시스템을 개발했었지만 통합과 동시에 이 시스템은 용도폐기됐고 장은 전산팀은 뿔뿔이 흩어졌다. 당시 전산통합 과정을 심사했던 A컨설팅 관계자는 “대용량처리 등에서 국민은행 시스템이 우월했기 때문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장은 출신들은 “정보처리 속도 등에서 장은시스템이 더 앞섰지만 말도 제대로 꺼내지 못했다”고 반박한다. 퇴사한 장은 전산팀은 이후 신한은행 산업은행 등에 여신관리 등 시스템 일부를 파는 데 성공, 자생력을 인정받고 있다.
▽외국에서도 발견돼〓외국에서도 합병의 진통은 종종 발견된다. 지난해 미국 네이션스뱅크와 BOA의 합병절차가 마무리된 이후 BOA 출신 임원들이 1명을 제외하고 모두 옷을 벗었다. 그러나 이같은 사례는 ‘경영효율’이란 시각에서 해당 은행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어 우리 은행 합병과 대조적이다.
H은행 관계자는 “앞으로 은행간 짝짓기가 우량은행간에 이뤄진다고 볼 때 합병 후유증은 더욱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박래정기자> eco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