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뒤편에 머물러있던 남북 당국이 전면으로 나섰다는 점에서 이번 조치의 경제적 파급효과는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크며 남북한 단일 경제공동체의 형성시기를 앞당기는 계기로도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당장 북한이 가용할 수 있는 재원이 거의 없는 상태여서 정부가 기대하는 북한특수가 일어날지에 대해서는 아직 회의적인 시각이 우세하다. 전문가들은 한꺼번에 모든 것을 얻으려는 자세보다는 한걸음씩 조심스럽게 내딛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재원이 문제〓북한이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은 남한 정부의 직접 지원과 대일 청구권 자금, 국제기구의 자금, 한국 및 외국기업의 진출 자금 등.
정부는 당국간 화해무드가 조성되면 한국 기업의 북한 진출에 이어 미국 유럽 일본 등의 기업들도 북한에 들어갈 것이라고 낙관한다. 그러나 기업 쪽의 반응은 다르다. 북한의 지불능력이 확인되기 전에는 어느 기업도 대규모 진출은 꺼릴 것이라고 전망한다.
북한의 가장 확실한 자금은 한국 정부의 직접 지원금. 현재 대외경제협력기금 7000억원과 남북협력기금 2000억원, 한국국제협력단 자금 400억원 등 1조원 가량의 재원이 확보돼 있다. 그러나 전액을 북한에만 지원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규모는 미미한 편이다.
이에 대해 이헌재(李憲宰) 재정경제부장관은 10일 “북한이 국제사회에 정상적으로 참여하게 되면 여러 국제기구의 자금을 끌어 쓸 수 있기 때문에 돈이 없어 발전을 못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장관의 전망대로 북한이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는다면 북한은 총 재원이 100억달러가 넘는 일본의 공적개발 원조(ODA)와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IBRD) 아시아개발은행(ADB) 등의 개발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다. 물론 이들 기구에 가입해야 한다는 전제를 충족해야 한다. 그러나 북한이 당장 이러한 국제기구에 가입할 여건을 갖출 수 있을지는 미지수.
대일 청구권자금은 규모가 50억달러 정도 될 것으로 추산되지만 언제 양측 협상이 끝날지 기약할 수 없는 형편이다.
▽해결해야 할 과제〓북한이 지불능력을 갖게 돼도 투자금 회수나 과실송금에 대한 보장 없이는 기업진출이 이루어지기 힘들다. 재경부 관계자는 “북한에 투자한 뒤 이익송금 등을 보장받고 필요하다면 북한에서 쉽게 철수할 수 있도록 해주지 않으면 아무리 정부가 나서도 대북투자 활성화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남북 당국은 우선 제도적 장치를 정비하는 작업에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북한측과 시급히 상의해야 할 과제로 △이중과세방지협정 △투자보장협정 △청산결제시스템 △분쟁조정기구 도입 등을 꼽고 있다.
▽탄력 붙은 남북 경협〓북한이 지불능력을 확보하고 남북간에 투자보장협정 등이 맺어진다면 남북경협은 본격적으로 물꼬를 트게 된다.
3월말 현재 북한 진출 국내 업체는 145곳. 현대상선 등 13개 업체가 1억3000만달러를 투자해 금강산관광 개발과 수산물채취 자동차수리업 등에 진출했고 의류봉제와 컴퓨터모니터 조립 등 임가공 분야에서 132개 업체가 2억1000만달러의 교역실적을 올렸다.
국내 업체들은 경공업 설비와 원자재를 반출, 북한 현지의 임가공을 통해 국내로 재반입하거나 중국 동남아 등 제3국으로 수출하는데 치중해왔고 북한측은 금 목재 한약재 등 농임산물과 토산품을 주로 반출해왔다.
당국 차원의 경협이 본격화돼 법적 제도적 기반이 갖춰지면 도로 철도 등 사회간접자본(SOC)에 대한 투자 외에 섬유 신발 의복 가전제품 등 소비재 분야의 투자는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박원재기자> parkw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