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社歌 잦아들고 그룹배지 사라지고…" 대기업 충성교육 퇴출

  • 입력 2000년 4월 12일 19시 23분


삼성직원들은 지난 수십년간 매일 아침 사내방송을 통해 흘러나오는 삼성 사가(社歌)를 듣고 업무를 시작해야 했다. 그것도 정장차림에 일어서서 단정한 자세로. 그러나 IMF체제 이후 사내방송에서 삼성사가가 울려퍼지는 횟수가 줄어들더니 요즘은 일주일에 한 번만 나온다. 캐주얼 복장으로 자리에 앉아 사가를 듣는다고 나무라는 사람도 없다.

삼성에서 인사정책 자문을 맡고 있는 삼성경제연구소 공선표이사(경영학박사)는 최근 계열사 인사담당 임원들에게 “회사에 직원들이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는 시대는 끝났다. 회사에 대한 충성을 요구하는 각종 프로그램은 폐지하고 자신의 직무에 충성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라”고 조언했다.

최근 각 대기업은 그룹이나 회사에 충성을 요구하는 ‘회사 로열티 프로그램’을 축소하고 직원들이 자신의 직무에 몰입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앞다투어 개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신입사원과 승진자를 대상으로 매년 실시되던 로열티 교육 △사내방송을 통한 조직문화 강화 △유니폼이나 각종 상징물을 통한 일체감 조성 프로그램이 하나둘 씩 폐지되고 있다. 공이사는 “회사가 스스로 충성도 프로그램을 포기했다기보다는 사회구조나 직장인의 인식자체가 더 이상 회사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을 용납하지 않고 있다”며 “사원들의 ‘몸값’을 올려주는 프로그램 개발만이 우수 인력을 유치하고 직원이탈을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전자와 삼성전자는 승진자를 대상으로 실시하던 회사에 대한 로열티 교육을 지난해 폐지했다. 로열티를 강요하는 교육은 효과도 없고 직원들로부터 오히려 반감을 사는 일아 잦아졌기 때문.

LG전자와 LG정보통신은 최근 정장차림을 폐지했다. 자연스럽게 그룹배지 착용 관행도 사라졌다. 누가 삼성맨인지 LG맨인지 구별할 수 있는 표식이 없어진 셈.

각 기업은 대신 사원들에게 특정업무의 전문가가 될 수 있도록 배려해주고 직원의 업무성과에 따라 연봉을 지급하는 ‘직무 로열티’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개인의 능력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열린 사원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대부분의 교육이 자율적으로 본인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기술인력들에게 특허교육과정을 만들어 수료하게 하거나 수시로 기술세미나를 열어 직원들의 전문성을 높이고 있다.

SK는 각 계열사의 임금을 인화차원에서 배려하지 않고 업무성과에 따라 지불하도록 하고 있다. 같은 그룹 계열사라는 집단주의 문화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계열사 직원이 다른 계열사로 옮기고 싶으면 경력사원 공채 때 다른 그룹 직원과 똑같은 조건으로 응시하도록 한다.

현대정보통신은 인사고과에서 팀고과 비중을 낮추고 개인의 업무성과를 중시하고 있다. “상대적인 박탈감을 우려해서 인화를 배려하던 고과제를 폐지하고 개인의 업무성과를 중시하는 고과제로 옮아갈 수밖에 없다”고 김태중상무는 강조했다.

삼성물산 인사담당 김창수이사는 “각 사업부가 팀에 맞는 경력사원을 수시로 뽑고 회사기여도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는 시대에 회사로열티는 무의미하다”며 “평생직장에서 평생직업 개념으로의 변화”라고 설명했다.

<이병기·박중현·홍석민기자>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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