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증시가 1개월 이상 조정을 받으면서 투자자들의 투자팬턴에 커다란 변화가 일고 있다. 투자의 판단기준으로 '순익'을 중시하는 고전적인 투자패턴이 다시 각광을 받고 있다.
기업이름에 '.com, tech, systems, gen'만 붙이면 '미래가치'를 명분으로 기업가치는 뒤로한 채 무조건 매입하던 '묻지마' 투자방식이 퇴조하는 대신 '순익(net profits)'을 남기는 기업의 가치를 중시하는 조짐이 일고 있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지난 14일 지난 1·4분기 영업실적을 발표한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사의 주가 동향. 이 기간동안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의 매출규모는 감소했으나, 순익이 전년 동기 에 비해서는 오히려 늘어난 데 힘입어 주가가 오름세를 타고 있다.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의 주가는 14일 전일의 주당 141.875달러에서 139.0달러로 하락했으나, 17일에는 149달러, 18일엔 150달러로 가파른 상승곡석을 그리고 있다. 이익을 남기는 회사야말로 투자가치가 있다는 것이 입증된 셈이다.
사실 미국증시가 지난 14일의 '블랙 프라이데이' 충격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었던 것도 기업수익 호전에 힘입은 것으로 증시 전문가들은 판단하고 있다. 특히 지난 17일의 미국증시는 기업의 순익이 투자판단에서 얼마나 중요한 지를 여실히 입증했다.
이날 1·4분기 기업실적을 발표한 기업은 20여개. 이중 세계적인 필름메이커인 코닥을 비롯 엘리 릴리, 메릴린치, 뱅크 오브 아메리카, 뱅크 오브 뉴욕 등은 두자리 순익 상승률을 기록하며 증시 반등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시장으로부터 수익모델에 의심을 받고 있던 아메리카 온라인(AOL)도 18일 1∼3월 중 특별경비를 제외한 순이익이 2억7,100만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16% 증가했다고 장중에 발표, 지수를 올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또 퀄컴사도 이날 장 마감후 같은 기간중 칩 매출 및 특허권 사용로 증대로 1억9,970만달러의 순익을 발생시켰다고 밝혔다. 퀄컴사는 작년 동기에 4260만달러의 순손실을 냈었다. 세계적인 인터넷 서버제조업체인 선마이크로시스템스도 1·4분기 매출이 35% 증가했고 수익은 무려 94%나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증시 전문가들은 선마이크로시스템스를 비롯한 AOL, 인텔, AMD 등 반도체 및 인터넷 등 첨단기업들과 금융 제약 등 전통기업들의 영업실적 호전이 주가의 상승탄력을 촉발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실제로 선마이크로시스템스 AMD 등은 지난 14일 주가폭락으로 잃은 주가를 지난 17일과 18일 이틀사이에 모두 회복했다.
기업의 순익을 보고 투자여부를 판단하는 미국증시의 '큰 손' 워렌 버핏은 폭락장세를 보였던 지난주(10∼14일)에 무려 5억7천만달러나 벌어들인 것도 투자자들의 투자 가치관에 변화를 일으키는데 한몫했다. 그는 순익을 기반으로 하는 기업가치를 중시하는 전통적인 투자기법으로 정평나있다. 첨단기술주의 미래가치를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실제 기업가치는 판단하기가 곤란하다며 이들 종목에 대한 투자를 자제해 온 그였다.
그러나 매출이 급증하는 등 외형은 커지고 있지만 실익(순익)이 없는 기업들의 주가는 회복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인터넷 전당포인 에이폰닷컴이라는 기업의 주가다. 이 회사의 주가는 아이디어가 참신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인터넷 열풍이 한창이던 작년 5월말 주당 63달러까지 치솟기도 했으나 최근에는 주당 2∼3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수익성이 의문시되면서 폭락일로를 밟고 있는 것이다.
작년 10월초 90달러대를 꿰뚫었던 e토이즈 역시 순익을 전혀 내지 못함에 따라 시장으로부터 '왕따'당하며 6달러대로 밀리는 등 수모를 겪고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아마존닷컴(Amazon.com)의 주가도 회복기미를 보이지 않기는 마찬가치다. 이 회사의 주가는 작년 10월10일 주당 106.69달러에서 18일 현재 54.94달러로 반토막났음에도 거래량이 급격히 감소한 채 투자자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반면 같은 인터넷 기업이면서도 그래픽 반도체 칩을 생산, 확고한 매출 및 순익기반을 갖고 있는 브로드닷컴의 주가는 작년 5월말 주당 50달러대에서 꾸준히 상승, 최근에는 3배 이상 오른 150달러 후반대에서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
냉혹한 시장에서 수익기반이 있는 기업과 수익기반이 없는 기업의 가치가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다.
방형국<동아닷컴 기자>bigjob@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