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국내 자동차업계는 세계 6위 업체인 르노라는 거함에 맞서 내수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할 것으로 전망되며 채권단은 ‘헐값 매각’이라는 일부 비난여론에 당분간 곤욕을 치러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자동차 산업에 미치는 영향〓삼성차 매각은 국내 완성차 업체의 사상 첫 해외 매각인 동시에 해외 자동차 메이커의 본격적인 첫번째 국내 진출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따라서 국내 자동차산업은 물론 사회 경제적으로 상당히 큰 파장을 몰고 올 가능성이 크다.
해외 자동차 업체가 단순한 판매에 머물지 않고 연구개발(R&D)과 생산 판매 등 자동차 사업 전반을 국내에서 직접 영위하는 것은 르노사가 처음이다. 이에 따라 국내 자동차업계는 대우차가 GM이나 포드에 매각될 경우 대우차 인수업체와 현대, 르노 등 3각 체제로 재편된다.
르노측은 삼성차 공장에서 2005년까지 현재 생산 중인 중형차 SM5 외에 소형, 대형, RV(레저용 차량) 등을 추가로 생산, 풀라인업 체제를 갖출 계획이다. 따라서 기아차를 포함하면 국내 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현대자동차와의 본격적인 경쟁이 불가피하게 됐다.
르노측은 2003년까지 한국시장의 10%를 점유하겠다고 호언장담하고 있고 업계에선 대체로 이를 인정하는 분위기. 특히 중형차 시장에서 현대를 위협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반응〓현대 대우 기아 등 국내 자동차 3사는 르노의 삼성차 인수가 확정된 데 대해 “그대로 놔둘 경우 고철로 폐기될지도 모르는 공장이라면 매각 금액에 상관없이 단돈 1달러에라도 팔아 계속 가동하는 게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지적했다. 그렇지만 르노 입성에 따른 불안감은 떨치지 못하는 모습이다.
반면 민주노총과 자동차 노조들은 “삼성차 매각은 국가 기간산업을 해외에 헐값으로 졸속 매각한 케이스”라면서 “아직 기반이 튼튼하지 않은 자동차산업이 초국적 자본에 의해 잠식 당하고 부품협력업체들은 막대한 피해를 볼 것”이라고 주장했다.
르노가 약속대로 2005년까지 연간 40만대 생산체제를 구축하면 총 19조1000억원의 생산유발효과가 발생하며 같은 기간 협력업체 생산유발효과도 약 6조3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고용창출효과도 만만치 않아 삼성차가 4000명에서 2만명으로, 협력업체는 3만명에서 15만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채권단의 손익계산과 추가협상 과제〓채권단은 원금 2조9500억원 중 삼성 이건희회장이 사재로 출연한 2조4500억원과 매각대금 및 현재 삼성자동차의 현금 보유액 773억원 등을 합하면 미회수채권은 114억원에 불과해 회수율이 99.6%라고 밝혔다.
그러나 현금지급을 받는 1100억원을 제외하고는 2014년까지 분할해 상환받기 때문에 이자비용을 감안한 현재가치 기준으로는 매각대금이 3298억원에 불과하다. 또 이회장이 출연한 삼성생명 주식도 당초 산정한 주당 70만원에 턱없이 못미친다는 분석을 감안하면 손해가 적지 않은 셈.
한빛은행은 또 △향후 분할 상환받는 2330억원에 대해 부산공장에 담보권을 설정하는 문제 △출자전환한 주식을 르노측이 되사는 콜옵션 기간을 2005∼2008년으로 한정하는 문제 △향후 숨겨진 부채가 나타날 경우 변제용으로 남겨둔 250억원을 100억원으로 줄이는 문제 등에 대한 추가 협상도 벌여야 한다.
한빛은행 유한조상무는 “다소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르노밖에 인수 희망자가 없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자동차업계는 “대우차까지 해외에 매각될 경우 한국 자동차 시장의 주인이 외국업체로 바뀔 수도 있다”면서 “기로에 선 자동차산업을 살릴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요구했다.
<박현진기자>witnes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