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I 경제전망 보고 '속도조절론' 제기

  • 입력 2000년 4월 26일 19시 22분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올해 우리 경제의 예상 성장률을 8.6%로 올려 잡으면서 경기과열과 ‘거품’ 발생을 예방하려면 경제를 보수적으로 운용해야 한다고 사실상 ‘경기상승 속도조절론’을 제기했다.

KDI는 26일 발표한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기업 및 금융구조 개혁을 올해 안에 마무리짓지 못할 경우 내년부터는 물가불안이 본격화하고 경기가 급격한 하강국면으로 빠져들 수 있다고 강하게 경고했다.

전철환(全哲煥)한국은행총재도 이날 “경기상승세가 지속되면서 여유 공급능력이 빠르게 줄어 물가상승 압력이 높아질 전망”이라며 연내 금리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내수과열로 국제수지 부담▼

▽성장이냐 국제수지냐〓KDI는 현재의 우리경제에 대해 “가파른 경기 상승세가 계속되는 가운데 물가는 다행히 안정됐지만 국제수지 전망은 매우 불투명하다”고 진단했다.

가장 우려되는 대목은 최근의 경기상승을 이끄는 축이 해외가 아니라 내수 부문이라는 점. 그 시발점은 작년부터 이어져온 저금리 기조다. 낮은 시중금리에 힘입어 기업의 수익성이 개선되자 설비투자 급증→임금상승→소비확대로 연결돼 내수경기를 부추기는 역할을 한 것.

내수부문이 과열 양상을 보이면서 자본재와 고급소비재 등의 수입이 급증, 경상수지 흑자관리에도 부담을 주고 있다.

KDI는 작년말 126억달러로 예상한 올해 국제수지 흑자규모를 80억∼90억달러로 낮췄다.성장률은 정부 목표인 6%대보다 2%포인트 가량 높아지지만 국제수지는 정부 계획(120억달러)에 훨씬 못미칠 것이라는 전망.

KDI 관계자는 “국제수지 흑자기조를 굳건히 하려면 성장률을 낮추는 방향으로 경제정책 운용기조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고성장과 저물가, 국제수지 흑자라는 ‘세마리 토끼’ 가운데 한 가지는 포기할 때가 됐다는 얘기다.

▼내년엔 인플레압력 가중▼

▽인플레 압력에 대비해야〓8%대의 높은 성장이 현실로 나타나면 올해는 아니더라도 내년부터는 물가 상승세가 뚜렷해질 가능성이 높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

김준경(金俊經) 연구위원은 “물가안정을 주도해온 디플레이션갭(총공급-총수요)이 작년 4·4분기(10∼12월)에 거의 해소된데다 올해에는 작년과 같은 큰 폭의 원화가치 상승을 기대하기 힘들고 임금상승률도 높아져 향후 물가를 낙관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이성태(李成太) 한은 조사국장도 “성장률이 높다고 해서 반드시 인플레 압력이 커졌다고 단정하기는 곤란하지만 실질성장률이 잠재성장률에 거의 근접한 것만은 분명하다”며 물가불안에 대비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금융등 본격 구조조정 결실▼

▽해법은 무엇인가〓관건은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성장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으면서 ‘거품’을 해소하는 방법. KDI는 본격적인 구조조정만이 거품을 제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저금리로 인해 시중에 유동성이 풍부한데다 물가불안도 가시화하지 않아 구조조정의 호기라는 것.

상대적으로 통화긴축의 필요성에는 큰 무게를 두지 않고 있다. 오히려 엄청난 규모의 금융계 부실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올해 안에 금융구조조정을 끝내지 않으면 부실 금융기관의 연쇄도산 등을 촉발하고 물가에 결정적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한은은 통화가 풀려있는 상태에서 재정 등 일부 분야의 긴축만으로 경기과열을 막는데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있다. 미국계 투자은행인 JP모건도 한은이 올해 안에 단기금리를 0.75%포인트 올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경기 연착륙을 유도하는 수단으로 ‘구조조정이 먼저냐’ ‘긴축이 우선이냐’는 논란은 올해 내내 뜨거운 논쟁거리로 남을 전망이다.

<박원재기자>parkwj@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