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최근의 ‘고성장 저물가’를 신경제의 영향이라고 부각시키는 가운데 한국은행과 민간경제연구소는 각종 통계치를 놓고 검증작업을 벌이고 있다.
미국식 신경제는 정보통신기술(IT) 산업이 주축이 돼 생산성을 높이고 이로 인해 경제성장이 지속되면서도 인플레이션은 나타나지 않는 상태. 성장이 지속돼 경기가 과열되면 물가도 오른다는 기존 경제학의 논리를 뒤집은 것으로 수년간 지속돼온 미국 경제의 호황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우리도 신경제?〓민간경제연구소는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 경제성장에 절반 가까이 기여하고 있는 IT의 발전이 우리 경제구조에 신경제의 싹을 틔우고 있다고 주장한다.
우선 인터넷 등의 발전으로 유통구조가 변하면서 상품의 가격이 떨어지고 있다는 점을 꼽는다. 실제 한은 조사 결과 대형할인점과 인터넷 쇼핑몰의 등장으로 96∼99년에 소비자물가 하락효과는 연평균 0.45%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정보통신부문의 생산성 향상으로 제품 값이 떨어지면서 관련 부품을 투입하는 최종 제품의 가격도 떨어지고 있다는 것. 한은은 정보통신제품의 물가가 91∼99년에 16.4% 떨어져 6.2%의 물가를 끌어내리는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인터넷구매가 늘면서 조달비용이 싸진다는 점도 중요한 요인.
최우석(崔禹錫)삼성경제연구소장은 “최근의 우리나라 경제 상황을 신경제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무리지만 조짐이 보이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아직은 시기상조〓신경제의 영향 분석작업을 벌이고 있는 한은은 좀더 신중한 입장이다. 현재의 고성장 저물가는 외환위기 이후 비상 경제체제의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즉 외환위기 이후 미국달러를 대량 확보하면서 환율이 크게 떨어졌으며 이같은 환율하락이 물가를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LG경제연구원의 강호병(姜鎬竝)연구위원도 “현재의 고성장 저물가 체제는 국제수지 적자와 자본유출로 환율이 올라가면 언제든지 깨질 수 있다”며 “우리 경제는 외부변수에 민감하기 때문에 섣불리 신경제를 논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더구나 미국은 10년간이나 저물가 고성장을 계속했지만 우리나라는 겨우 1년의 거시지표가 호전됐을 뿐이어서 신경제를 논할 상황이 아니라는 것.
한은 관계자는 “신경제 징후를 입증할 만한 통계자료를 확보해 계량화하기가 어렵다”면서 “우리나라에도 신경제 기미가 보이기는 하지만 단정하기는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박현진기자>witnes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