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상으론 헐값 매각〓르노의 삼성차 인수대금은 5억6200만달러(6200억원). 이중 현금으로 지급하는 돈은 1억달러(1100억원)이고 나머지 5100억원은 부채를 인수하거나 향후 10년간 영업이익의 10% 내에서 분할 상환하게 돼 현재가치로 추산하면 3000억∼3500억원에 불과하다는 게 업계의 계산.
삼성차의 자산가치는 당초 1조원을 상회하는 것으로 평가됐다. 삼성차를 법정관리중인 부산지법이 한국신용정보에 의뢰, 실사한 결과 삼성차는 청산할 경우에도 1조4000억원의 자산가치를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차 매각주간사인 파리바은행과 미국계 컨설팅 회사인 KPMG가 산정한 가치도 1조원이었다. 채권단이 협상과정에서 ‘밀렸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삼성그룹이 삼성차에 쏟아부은 금액은 총 4조2000억원에 이른다. 55만평 공장부지를 조성하는 데만 6000억원의 비용이 들었다. 생산시설과 부대시설을 짓는 데 추가로 2조원 가량이 쓰였다. 르노 입장에선 부지 조성 비용도 안되는 금액에 인수한 셈.
삼성측은 채권단측의 손실은 거의 없다고 보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이건희(李健熙)회장이 사재를 출연해 2조4000억원의 채권단 채무를 갚아주기로 한 상태이기 때문에 채권단의 입장에선 6000억원 선에 매각하면 충분했다”고 주장했다.
싼값에 샀다고는 하지만 르노측이 공장을 정상화하기 위해 들여야 할 부담도 만만치 않다. 삼성차는 98년 6771억원의 적자를 기록했고 지난해에는 빅딜론이 불거지면서 상당기간 가동이 중단돼 공장 정상화에는 엄청난 추가 비용이 예상된다. 특히 르노측이 계획대로 40만대 규모의 설비를 갖추려면 최소 1조원 이상의 추가투자가 요구된다.
▽보이지 않는 득실〓‘헐값 매각론’의 전제는 공장이 계속 가동된다는 점. 삼성차 공장과 생산 설비는 자동차가 생산될 때만 제대로 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르노와 같은 자동차 업체가 사들여 운영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많은 돈이 투자됐어도 부산공장은 거대한 부지와 고철덩어리일 뿐이다.
삼성차가 삐걱대면서 침체의 늪에 빠졌던 부산 경제는 매각이 발표되자 모처럼 축제 무드에 휩싸였다. 삼성차 문제가 비교적 조기에 매듭지어져 고용 문제를 비롯해 부산지역 경제에 엄청난 플러스 효과를 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래서 업계의 한 임원은 심지어 “공장을 돌려만 준다면 단돈 1달러에라도 파는 게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도 한다. 르노측은 2월 부산공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중형차 SM5 외에 소형 대형 레저용차량(RV) 등 풀라인업을 갖춰 연간 총 40만대 규모의 자동차를 생산하겠다고 약속했다.
계획대로라면 2005년까지 삼성차와 2300여개 협력업체를 합쳐 37만명 정도의 고용창출이 기대된다.
부산자동차산업살리기 범시민대책위원회는 “르노의 향후 투자 금액은 1조2000억원 정도로 앞으로 7년간 138만명의 일자리를 창출하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이번 매각을 놓고 주체별 득실을 계량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홍석민기자>sm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