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수지 불안]수입 폭증…4월수지 2억달러 '턱걸이 흑자'

  • 입력 2000년 5월 1일 18시 53분


가파른 경기상승세가 지속되면서 수입이 폭발적으로 늘어 외환위기 이후 견실한 흑자기조를 유지해온 국제수지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기업 및 금융개혁이 이해 당사자들의 반발로 지지부진하고 ‘현대그룹 위기설’이 나도는 가운데 무역수지까지 악화되자 일부 외국계 주식투자자금이 동요하는 등 부작용이 금융시장 전체로 파급되는 양상이다.

전문가들은 “외환위기의 여진(餘震)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흑자 기조가 무너지면 대외신인도 하락과 외국자본 이탈을 초래해 제2의 외환위기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하고 있다.

▽간신히 적자 벗어난 무역수지〓1일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4월중 무역수지(잠정치)는 수출 136억4100만달러, 수입 134억1600만달러로 2억2500만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 올들어 무역수지 흑자 규모는 2월 7억3300만달러, 3월 2억3100만달러에 이어 계속 하락세. 지난달에도 20일까지 20억달러 이상의 적자를 내다 월말 ‘밀어내기 수출’로 가까스로 흑자를 유지했다.

산자부는 “소비재보다는 원자재와 자본재 등 기업들의 시설투자와 관련된 분야의 수입이 늘고 있어 당분간은 수입 급증세가 지속될 것”이라며 “성장잠재력을 키우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속내용은 나쁘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같은 추세가 계속될 경우 올해 국제수지 흑자 목표인 120억달러 달성이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 자칫 내년에는 적자로 반전될 수도 있다고 보고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재정경제부 권오규(權五奎)경제정책국장은 “수출 자체는 문제가 없지만 유가 등 해외부문의 변수가 워낙 많아 고민”이라며 “일단 국제수지 흑자 100억달러를 지켜내는 데 주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심상치 않은 외국인 자금 움직임〓상당수 외국계 금융기관들은 한국시장에서 한꺼번에 돈을 빼내기보다는 정부의 개혁노력과 각종 거시경제 지표 추이를 지켜본 뒤 투자패턴을 결정한다는 입장. 미국계 증권사인 메릴린치 관계자는 “무역흑자로 벌어들인 돈은 한국이 독자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자금이라는 점에서 자본유치로 들어온 돈과는 성격이 다르다”면서 “개혁후퇴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국제수지까지 나빠지는 것은 분명 악재”라고 말했다.

외국 투자자 입장에서 무역수지 흑자 감소는 ‘국내 외환시장의 달러공급 감소→원화가치 절상압력 완화→환차익 여지 축소’로 이어져 달갑지 않은 측면도 있다. 또 다른 외국계 금융기관 관계자는 “한국은 무역수지가 나빠지면 곧바로 경제 전체가 몸살을 앓는 사태로 번진 적이 많았던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 속도조절론 대두〓한국은행 관계자는 “외환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나려면 물가 및 금리의 안정과 함께 경상수지 흑자기조 유지가 필수적”이라며 “80년대초 경상수지 흑자폭이 급격히 줄어 구제금융을 받은 지 3년만에 다시 위기에 빠져든 멕시코의 전례를 참고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현 시점에서 고성장과 저물가, 국제수지 흑자라는 ‘세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겠다는 정책 방향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김준경(金俊經)연구위원은 “국제수지 흑자는 미처 예상치 못한 외부충격이 발생했을 때 이를 흡수할 수 있는 완충지대의 성격을 갖는다”면서 “무역수지 흑자가 줄어든 주 원인이 내수 팽창에 따른 수입급증에 있으므로 재정긴축 등을 통해 성장속도를 늦추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원재·이명재기자>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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