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투신사태 문제점]재벌 과욕이 화 불렀다

  • 입력 2000년 5월 2일 19시 19분


현대투신 부실 문제가 금융시장 불안요인으로 등장한 것을 계기로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으로 여겨지는 산업자본의 금융업 진출이 과연 바람직한가에 대해 논란이 무성하다.

현대투신 문제에서 비롯된 현대사태는 단순히 한 그룹의 금융사가 일으킨 문제라기 보다 재벌의 금융업 확장이 불러 온 후유증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증시가 호조를 보일 때는 괜찮지만 침체에 빠져들면 금융회사에 출자한 해당 그룹의 계열사들이 함께 시장의 신뢰를 잃는 부작용이 이번 현대투신 사태에서 나타났다는 점은 눈여겨봐야 할 교훈.

▽재벌의 투신업 확장 후유증〓현대그룹이 96년말 부실덩어리였던 국민투신을 인수한 이유는 독과점 체제였던 투신업을 인수하면 산업자본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이 컸기 때문.

당시 인수작업에 참여한 현대그룹 관계자는 “투신산업은 증시만 살아나면 저절로 경영이 되는 독과점 체제여서 은행예금을 빌려 쓰는 것보다 계열사 지원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판단해 일부 반대를 무릅쓰고 인수를 결정했다”고 털어놓았다.

현대는 부실한 국민투신을 빨리 정상화하기 위해 몸집을 키울 필요가 절실했고 이 과정에서 바이코리아펀드를 만들어 1년만에 수탁고 10조원을 달성하는 추진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초 목표와 달리 주가침체가 이어지고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현대투신은 엄청난 부실을 떠안고 정부 지원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금융회사를 이용한 계열사 지원〓문제는 산업자본이 투신을 경영하면서 내실보다는 외형경쟁에 치중, 수탁고를 부풀리는데만 주력하면서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원기(李元基)리젠트자산운용사장은 “현대뿐만 아니라 삼성 LG 등 재벌그룹이 투신업에 진출하면서 서로 수탁고 경쟁을 벌여 수익률을 높게 불렀고 이런 과당경쟁이 대우채권 과다편입의 계기가 됐다”고 분석했다. 외형 경쟁 위주로 자산을 운용하다 보니 부실채권까지 편입해 투자자들에게 손해를 입히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

뿐만 아니라 수많은 고객이 맡긴 돈을 운용하면서 계열회사의 주식과 채권을 인수, 결과적으로 계열사를 지원하는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을 해왔다. 장순영(張舜榮)한양대교수는 “현대가 국민투신을 인수할 당시부터 산업자본의 창구역할을 삼으려는 의도가 짙었다”면서 “지난해 구조조정 과정에서 현대그룹은 유상증자 등의 자금줄로 현대투신을 톡톡히 이용할 수 있었다”고 비판했다.

▽정부의 오락가락 정책도 한몫〓현대투신 부실이 확대재생산 과정을 밟고 있는 데는 대책마련에 미온적이었던 정부의 책임도 빼놓을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정부는 실적배당을 해야 하는 투신사들이 은행처럼 장사를 해도 한국적 특성을 거론하면서 수수방관하는 자세로 일관해 투신사 부실을 더욱 부추겼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89년 12·12 증시부양조치 때부터 줄곧 투신사를 주가부양의 정책도구로 활용해온 것도 비난받아 마땅하다.

금융당국은 재벌그룹의 금융업 실험을 수수방관하면서 정책 타이밍을 놓쳤을 뿐만 아니라 사후규제와 감독업무마저 소홀히 해 부실을 키워왔다.

좌승희(左承喜)한국경제연구원장은 “투신사들이 은행처럼 행동하도록 내버려둔 정부의 책임이 크다”며 “과거 관행에 얽매여 투신 문제를 다뤘기 때문에 지금은 경제적 문제로 해결하기 어려운 상태가 됐다”고 말해 이미 경제적 논리를 떠나 정치적 해결이 필요한 사안이 됐다는 분석.

<최영해기자>money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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