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포커스]SK그룹, 지주회사 '중심이동'

  • 입력 2000년 5월 9일 18시 58분


SK그룹의 실질적인 지주회사가 바뀌고 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그동안 지주회사 노릇을 해 온 SK상사가 SK㈜(구 유공)에 역할을 넘겨주고 있는 것이다.

SK측은 이를 “자산이 상대적으로 적은 SK상사가 지주회사로 있으면 경영권 방어에 문제가 많다고 보고 지분구조를 변화시킨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재계는 지분구조 변화가 후계구도와도 관련이 깊은 것으로 보고 있다.

SK그룹의 지분 구조는 SK상사가 유공의 대주주이며 또 유공은 SK텔레콤의 대주주로 SK상사가 그룹의 중심회사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번 7월 지분정리가 계획대로 끝나 합병등기를 마치면 고 최종현(崔鍾賢)회장의 장남인 최태원(崔泰源)회장이 맡고 있는 SK㈜가 그룹의 지주회사로 떠오르게 된다.

최회장이 후계 구도를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3개의 과제가 있다.

우선 손길승(孫吉丞)회장으로부터 그룹회장직을 물려받는 일과 사촌형제들간의 재산분할 마무리, 그리고 친동생인 재원(再源)씨와의 업무관계 정립 등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그룹회장 취임을 미루는 것은 손회장이 그룹회장으로 대외적인 역할을 잘 해주고 있어 최회장이 내부업무에 치중할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언제든지 해결될 수 있는 문제. 친동생과의 업무관계 정립도 두 형제가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문제가 없다는 것이 업계측 시각.

미묘한 부분은 최회장이 사촌형제인 최윤원(崔胤源) 신원(信源) 창원(昌源) 등 3형제와 재산분할을 어떻게 정리할 것이냐는 점.

고 최종현회장은 친형 종건회장이 73년 사망한 후 창업자 자리를 이어받아 대그룹으로 성장시켰다. 이 때문에 최태원회장은 아버지를 대신해 사촌들을 배려해야 하는 입장이다. 98년 최종현회장이 폐암으로 작고했을 때 두 집안은 자칫하면 재산분쟁에 휩싸일 수도 있었지만 두 집안의 형제들은 최태원회장에게 힘을 몰아줘 위기를 극복했다.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재계에서는 이번 지분구조 변화를 최태원회장 형제는 SK㈜와 SK텔레콤을 중심으로 그룹을 운영하고 업무능력과 강력한 경영참가 의지를 갖고 있는 최창원전무가 SK상사를 중심으로 회사를 키워나가 결국 분가를 하는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SK상사는 011 단말기 대리점을 관리하는 SK유통과 전국 각지의 주유소를 관리하는 SK에너지판매와 통합을 앞두고 있어 전자상거래시대의 하부구조를 갖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인터넷 기업으로의 변신을 앞두고 있는 종합상사가 물류 하부구조를 갖추고 있어 성장잠재력이 크다는 것.

최윤원회장과 최신원회장은 이미 SK케미칼과 SKC 회장을 각각 맡고 있다.

SK그룹은 재계의 관측과 관련, “공정거래법이 바뀌어 SK㈜가 법적으로 지주회사로 인정을 받게 되면 각 계열사가 독자적인 경영을 하게 되고 이렇게 되면 그룹에서 어느 회사가 분리해나가는 것은 무의미해진다”며 “후계구도를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말한다.

<이병기기자>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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