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철도 차량 선정은 헬무트 콜 당시 독일 총리와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직접 방한해 이 문제를 거론할 정도로 이들 나라에서도 국가적 관심사였다.
92년 1월 3국의 회사들로부터 제의서를 접수하면서 막이 오른 차량 선정작업은 여섯 차례에 걸쳐 수정 제의서를 요청, 접수하는 우여곡절을 겪다가 93년 8월 프랑스의 GEC-알스톰사가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됨으로써 결정적으로 TGV측에 기울어졌다.
92년 제의서를 접수할 때부터 93년초까지 교통부장관은 노건일(盧建一) 현 인하대총장이었으며 철도청 고속철도건설기획단장으로 실무를 지휘하던 김종구씨는 고속철도공단 출범에 따라 공단 이사장으로 옮겨 작업을 계속했다. 김 전이사장은 93년 김영삼정부가 출범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박유광(朴有光)전이사장에게 자리를 넘겨주었다.
감사원 감사 결과와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의 주장에 따르면 5차까지는 독일 ICE제작사인 지멘스사가 앞섰으나 최종 6차 입찰에서 알스톰사가 ‘막판 뒤집기’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멘스사는 당시 선정과정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재입찰을 요구하는 등 거세게 항의해 한국 독일 프랑스 간 삼각외교마찰을 일으키기도 했다.
6차 입찰을 지휘하고 두 달 뒤 알스톰사를 우선협상대상자로 발표할 당시의 책임자는 박유광 전이사장(현 아더앤더슨 그룹 전략경영연구소장)과 이계익(李啓謚)교통부장관(현 문화일보 부사장)으로 이들이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알스톰사를 선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결재 계통에 있던 고위층 중에서 현재 관련 기관에 근무하는 사람은 거의 없으며 실무자들은 “사업비를 한푼이라도 깎으려고 안간힘을 썼는데 거액의 로비자금이 웬 말이냐”는 반응을 보였다. 일찍부터 사업에 참여한 고속철도공단의 정용완(鄭龍完)사업조정실장에 따르면 공정한 입찰을 위해 고속철도공단 관계자는 물론 국내 전문가 집단과 미국의 전문평가기관인 벡텔사 등 3개 팀(모두 55명)으로 나눠 입찰 평가단을 구성했다. 평가단은 총점을 3만점으로 하여 계약조건 경제성 기술조건 기술이전 및 국산화 등 네 가지 분야에 각각 7500점씩을 배점해 개인별 평가를 평균 합산했다고 한다.
최종 입찰 결과에 대해 고속철도공단측은 독일과 프랑스 2개사의 제의조건을 종합 심사한 결과 알스톰은 302개 평가항목 가운데 143개 항목에서 우세한 반면 지멘스는 기술과 기술 이전조건 등 105개 항목에서 우세했으며 나머지 54개 항목에서는 동점이어서 알스톰을 우선 협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치권과 전문가들은 아직도 고속철도의 핵심기술로 꼽히는 차량항목 전차선 열차자동제어 분야에서 알스톰사보다 점수가 상대적으로 높았던 지멘스사가 선정되지 못한 배경에 강한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佛 알스톰 어떤 회사▼
경부고속철도 차량 공급자로 선정된 알스톰사는 에너지 수송분야의 거대 기업으로 고속철 이전에도 울진 원전과 서울지하철 등으로 국내에 알려졌다.
영국 GEC PLC와 프랑스 알카텔 알스톰 그룹의 합작회사인 알스톰사는 94년 경부고속철도 차량공급 계약체결 당시 삼성전자와 LG산전 유코레일 대우중공업 현대정공 등 국내외 업체들로 구성된 ‘한국TGV컨소시엄’을 이끌어 최종 승자가 되었다.
철도제작설비의 절반 이상이 몰려 있는 유럽을 기반으로 한국 등 전세계 23개국에 진출해 있으며 7만3000여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97년 회사이름을 ‘GEC-알스톰’에서 ‘알스톰’으로 바꿨다.
연간 매출액은 9조7232억원으로 전체 매출액 가운데 40% 이상을 유럽 이외의 지역에서 달성할 만큼 국제화된 기업. 으로 △시스템 설계 △공급 △시운전 유지보수 등의 부문으로 나뉘어 운영되고 있다.
에너지 및 발전소와 전력 송배전, 철도 수송, 산업기계, 전기장비, 해상운송 장비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사업을 하고 있으며 종합상사인 ‘알스톰 인터내셔널’을 통해 전세계 판매망을 구축, 포괄적인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해 유수기업들의 벤치마킹 대상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그러나 90년 네덜란드 철도회사에 38대의 기관차 공급 계약을 따내기 위해 120만달러(약 13억원)의 뇌물을 제공하고, 당시 프랑스 집권당이었던 사회당에 750만프랑(약 150만달러)의 정치자금을 제공했다는 내용이 주요 일간지에 보도되는 등 뇌물 관련 스캔들도 끊이지 않아 왔다.
<신연수기자> ys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