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장관 긴급회의]맑음서 흐림으로 '기상' 급변

  • 입력 2000년 5월 16일 19시 34분


경제장관들은 16일 최근의 경제상황에 대해 한 목소리로 ‘우려’를 표시하면서도 각종 현안을 더욱 세심하게 챙기겠다고 다짐했다.

“우리 경제가 심상치 않다”는 지적이 제기될 때마다 ‘근거없는 비관론’으로 치부했던 것에 비하면 매우 이례적인 모습. 올해 초 일부 고위 당국자들이 벤처열풍과 주가급등에 고무돼 “미국식 신경제(저물가 고성장)가 마침내 한국에서도 재연되고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었던 모습을 떠올리면 격세지감마저 느껴진다.

그만큼 우리 경제를 둘러싼 대내외의 여건이 불투명함을 인정한 것이라는 분석.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지나친 낙담은 곤란하지만 그렇다고 정부가 방심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점을 시장 참가자들에게 분명하게 알리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관건은 국제수지와 금융시장 안정▲

상당수 경제전문가들은 한국경제가 맞닥뜨린 가장 큰 현안으로 국제수지 흑자의 급격한 축소와 구조조정 지연에 따른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을 꼽는다. 외환위기에서 벗어났다는 자족감에 빠져든 사이 과소비가 다시 고개를 들고 단기외채가 올 들어 53억달러나 증가한 것도 걱정거리다.

특히 국제수지의 경우 경상수지 흑자폭이 줄어든데다 원유가 폭등까지 겹쳐 올해 정부 목표인 120억달러 흑자 달성은 사실상 ‘물건너갔다’는 관측이 확산되고 있다.

투신 부실을 처리하기 위해 막대한 공적자금 투입이라는 고육책을 썼지만 금융시장은 좀처럼 안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주가는 맥을 못추는 것도 정부를 곤혹스럽게 한다.

▲정책기조 변경은 일단 유보▲

배석자 없이 열린 이날 회의는 심각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는 후문. 일부 참석자들은 자성론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상황변화를 예의주시하되 정책기조를 긴축으로 전환하는 등의 과도한 처방은 유보하기로 했다. 국제원자재 가격과 미국경제의 연착륙 여부 등 해외부문의 변수가 산적해 있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 섣불리 정책방향을 바꾸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판단 때문이다. 대신 기업 및 금융구조조정을 강도 높게 추진해 외국인 투자자를 비롯한 시장의 신뢰를 되찾는 데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재경부 관계자는 “정책의 일관성이 중요하다는 데 장관들의 견해가 일치했다”면서 “상반기 우리 경제의 결과물을 토대로 6월말경 하반기 경제운용 계획을 짤 때 대내외의 여건 변화를 반영해 거시경제지표 전망치를 종합적으로 점검할 것”이라고 말했다.한국개발연구원(KDI) 심상달(沈相達)연구위원은 “경제장관들이 경각심을 갖고 정부차원의 대처방안을 모색하기로 한 것은 바람직한 결정”이라며 “대증적 대응보다는 경제 체질을 강화할 수 있도록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재정의 건전성을 확보하는 데 힘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원재기자>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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