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긴급 자금수혈로 급한 불은 끌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향후 채권금융기관의 기관 이기주의와 현대의 유동성확보 계획 차질 등 자금위기를 완전히 벗어나기 위해서는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보다 신뢰도를 높일 수 있는 조치를 기다리는 분위기다.
▽단기유동성 위기의 실체〓28일 현대그룹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에 따르면 현대건설의 경우 3월초부터 5월15일까지 만기도래한 기업어음(CP) 및 회사채는 9314억원에 이르며 이중 7714억원을 상환하느라 단기자금 부족현상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향후 만기가 돌아올 금액을 보면 31일까지 CP 3000억원과 회사채 200억원 등 3200억원. 이에 따라 외환 한빛 조흥 주택 국민은행 등 5개은행이 언제든지 빼쓸 수 있는 당좌대월한도를 각각 500억원씩 모두 2500억원을 늘려 긴급자금을 지원키로 했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일단 이정도 금액이면 급한 불은 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현대건설에 7월중 상당 자금이 들어오고, 7월 이후에는 회사채만기가 연중 고르게 분산돼 있어 6월까지만 은행권에서 자금수혈을 하면 단기유동성 문제는 조기정상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현대상선의 경우 6월 이후 4750억원의 만기가 도래하지만 매달 운임수입 4000억원, 가용예금 2000억원, 당좌대월한도 4400억원을 바탕으로 자금수급계획을 세워놓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이 채권단과 현대상선의 공통된 시각.
▽불씨는 남아있다〓현대건설의 자금난과 관련해 우선 채권금융기관들의 협조가 지속될 지가 관건이다. 과거와 같은 협조융자나 워크아웃 형태가 아니기 때문에 주채권은행이 자금지원을 다른 금융기관에 강요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해당 금융기관의 기관이기주의로 지원을 거부할 경우 난항이 빚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
실제 외환은행은 농협과 산업은행측의 추가 자금지원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했지만 농협은 당좌대월한도가 차서 한도증액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이며 산업은행측은 “그런 얘기는 들은 적도 없다”고 밝히고 있어 이같은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또 채권금융기관의 긴급자금 지원은 만기도래 금액 중 일부가 만기연장된다고 가정을 하고 지원을 한 것. 따라서 제2금융권 등에서 정부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만기연장을 계속 거부할 경우 채권금융기관은 지원금액을 더욱 늘려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문제는 무엇보다 현대건설측이 밝힌 유동성확보계획이 제대로 실현이 될 것이냐는 점. 현대건설측은 유가증권 매각을 통해 연말까지 3800억원의 자금을 조성하겠다고 했지만 현재 불투명한 증시와 주식수급상황을 고려할 때 결코 낙관할 수 없는 상황.
금융연구원 관계자는 “현대 단기자금 위기의 근본 해결책은 현대의 신뢰회복이 가장 우선”이라며 “금융기관도 어느때보다 협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박현진기자> witnes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