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3조4000억 재원 마련"…31일까지 최종안 조율

  • 입력 2000년 5월 29일 00시 00분


현대그룹은 28일 현대건설의 자산매각과 그룹의 투자규모 축소, 서산농장 활용 등을 통해 총 3조4000억원의 자금을 조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추가 구조조정 계획을 주채권은행측에 제시했다.

현대측은 그러나 구제금융을 받는 대가로 금융당국과 주채권은행이 요구한 △정주영(鄭周永)명예회장의 완전한 일선 퇴진 △이익치현대증권회장 등 일부 가신그룹 인사의 퇴진 △우량계열사 매각 등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을 하지 않아 사실상 거부했다.

이에 대해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은 유동성 확보 등 일부 자구계획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평가, 조건부 수용방침을 밝혔으나 정부일각에선 미흡하다는 반응을 나타내는 등 평가가 엇갈려 현대사태로 혼미상태에 빠진 금융시장이 월요일인 29일 어떤 움직임을 보일지 주목된다.

현대는 주채권은행측이 요구한 자구계획 제출시한인 28일 ‘현대의 입장’이란 자료를 통해 공식입장을 표명하면서 서산농장 활용 등 일부를 제외하곤 새로운 내용을 내놓지 않았다.

재정경제부와 외환은행은 현대의 자구계획 발표 직후 실망을 금치 못한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냈다가 곧바로 입장을 번복, 자구계획 내용을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29일부터 현대측과 구체적인 협의에 나서 31일까지 최종적인 자구계획을 확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대측도 발표직후 정부가 강경한 비판입장을 천명하자 “시한에 쫓겨 급하게 발표했을 뿐 이날 발표 내용이 현대측 최종안은 아니다”고 한발 물러서 극적 타결의 여지를 남겼다.

현대는 이날 오후 8시 발표한 ‘현대의 입장’자료에서 정명예회장이 현대자동차 최대주주 지위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으며 이익치 현대증권회장과 이창식 현대투신사장에 대한 문책인사 문제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현대의 자구계획은 현대그룹이 나서서 현대건설 회생을 위해 자산 및 주식 매각으로 5426억원의 새로운 재원을 마련하고 설비투자 축소를 통해 2조2000억원을 여유자금으로 확보하며 시가 6400억원에 달하는 서산농장을 담보 등으로 활용하겠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모두 3조원 안팎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현대건설이 마련할 재원은 상장 및 비상장주식 매각 3385억원, 부동산 매각 1041억원, 미분양상가 자산담보부증권(ABS) 발행을 통한 1000억원 등 5426억원 규모다.

정부는 이에 앞서 27일 저녁 재경부 기획예산처장관과 금융감독위원장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 외환은행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긴급대책 회의를 갖고 현대그룹에 대해 강도 높은 경영개선 및 구조조정 조치를 취할 것을 공식적으로 촉구했다.

경제장관들은 이와 함께 제2금융권 기관들에 대해 현대의 만기도래 회사채와 기업어음 등에 대한 자금회수 자제를 요구했다.

이용근(李容根)금융감독위원장은 “금융시장이 일부 현대계열사 문제를 그룹 전체의 문제로 인식하는 것은 현대측이 구조개혁을 기대만큼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현대는 조속한 시일 내에 시장이 신뢰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편 현대사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정몽헌(鄭夢憲)회장과 김윤규(金潤圭)현대건설사장이 27일 돌연 일본으로 출국했다.

<박원재·이병기·박현진기자>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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