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봉은 더 큰 화를 부른다〓양측 세 싸움에서 승패의 열쇠는 시장이 쥐고 있다. 시장이 급속하게 안정되면 현대는 ‘핵심을 비켜가며’ 그룹경영을 유지할 것이다. 금감위 서근우 제2심의관은 “현대보다 시장이 우선”이라며 “시장이 예상 밖으로 안정세를 보일 경우 현대와 채권단 협상에서 뚜렷한 결론이 나오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사태가 미봉될 수도 있음을 내비친 대목이다.
그러나 고객이나 회사의 돈을 관리하는 국내외 기관투자가들을 미봉책으로 다독거리기에는 한계가 있다. 현대의 문제가 상당 부분 ‘지배 구조의 후진성’에서 비롯됐고 현대에 투자했을 경우 안을 수 있는 ‘위험’이 이미 드러났기 때문이다.
또 다른 금감위 고위관계자는 “기관투자가들은 시장이 흔들릴 때보다 안정될 때 소리소문 없이 문제기업에 빌려준 돈을 회수한다”며 “단기적인 시장안정과 화근 제거 사이에서 고민스럽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겉도는 쟁점들〓현대 구조조정본부 이주혁이사와 외환은행 현대전담팀 실무자들이 전날에 이어 29일 오전 7시부터 마주앉았지만 쟁점은 재원 마련에만 국한됐다. 당초 거론됐던 △유동성확보 △계열사 매각 △기업지배구조 개선 등의 3가지 쟁점중 유동성 확보 분야에만 초점을 맞춘 것. 협상은 현대의 유동성 확보책에 대해 외환은행이 ‘A자산은 너무 과대평가됐다, B는 오히려 과소평가됐다’는 식의 ‘계수조정’으로 흘렀다.
황학중 외환은행 상무는 “현대측이 28일 내놓은 ‘입장’중 후계구도와 지배구조 선진화 부분은 더 이상 채권은행의 관심사가 아니다”고 선언했다. 외환은행측은 이에 앞서 정부와의 사전교감설을 전면 부인했지만 금감위측이 긴밀히 접촉하며 감독하고 있다는 징후는 여러 곳에서 감지된다.
▽확전(擴戰) 꺼리는 정부〓현대는 27일 현대증권 현대투신 주총에서 이익치증권회장과 이창식투신사장을 각각 유임시켜 퇴로를 차단했다. 정주영명예회장을 유일하게 설득할 수 있다는 정몽헌회장이 일본으로 떠났고 28일 오후 채권단에 ‘현대의 입장’을 전달한 뒤 연락을 끊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현대가 배수진을 치자 정부 채권단은 오히려 확전을 피하는 자세로 나왔다. 이용근 금융감독위원장은 29일 ‘정부가 현대에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했던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에 “시장입장을 그대로 전달했을 뿐이며 채권단과 현대협상에 개입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정부는 현대와 정면충돌하는 인상을 줄 경우 자금시장 불안이 수습하기 어려운 지경에까지 빠질 것으로 우려하는 듯하다. 실제로 7월 실시되는 채권시가평가제 등은 시장이 흔들리는 상황에서는 실시하기 어려운 개혁안들이다.
▽도마에 오른 ‘측근경영인 배제’〓시장은 바이코리아펀드로 증시를 흔들었던 이익치회장의 거취에 관심을 쏟았다. 정부는 이날 “특정인더러 나가라고 한 적이 없다”고 발을 뺐지만 금감위 실무자들은 그동안 현대경영진 몇 명의 실명을 들먹이며 “시장불안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지적해왔다.
금감원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체제 직후 SK증권 부실에 책임을 지고 퇴진한 박도근 전사장이 SK건설 부회장으로 선임될 당시 ‘해임권고를 받았던 사람을 그룹 경영에 복귀시켜선 안된다’고 제동을 걸었다. 그러나 증권거래법 위반으로 유죄를 선고받고 금감원의 3개월 업무정지까지 받았던 이회장에 대해선 이날부터 언급을 피하고 있다.
증권가에선 △4월말 현대투신 사태가 정부의 공적자금 투입 배제 방침에서 촉발됐고 △대북사업을 주도하는 현대를 몰아세울 경우 6월 남북정상회담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주변정황을 감안한 것으로 풀이한다.
<박래정·이나연기자> eco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