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경영의 종식과 자금난의 문책을 위해 정주영명예회장과 이익치회장을 퇴진시키라는 주문이 있었지만 현대는 이보다 한발 더 나아가 명예회장뿐만 아니라 몽구 몽헌회장 등 3부자의 동반퇴진을 결심했다. 계열사를 21개사로 줄이고 사실상 그룹을 해체키로 한 것을 포함해 31일 현대가 발표한 구조조정 방안은 일단 긍정적이며 다른 기업에도 교훈적이다.
이번 극단적 처방의 배경이 무엇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오늘날의 상황은 지난번 이른바 ‘왕자의 난’때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 2세들의 등장과 함께 전근대적 경영행태로 늘 비판의 대상이 되어 왔던 현대는 이 사태 이후 각종 루머에 시달리면서 시장으로부터 외면을 받아 오다가 결국 최후의 승부수를 던져야 하는 막다른 길에 서게 됐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현대에 지금 남아 있는 과제는 이번 발표를 얼마만큼 신속하고 진솔하게 실천하느냐 하는 것이며 그 결과에 따라 이 기업의 장래는 판이하게 다른 두 갈래 길 중 하나를 걷게 될 것이다. 국민과의 약속이 제대로 이행될 때 현대 계열사들은 그야말로 선진형 경영구조를 갖는 세계적 기업으로 환골탈태하겠지만 만에 하나 여론을 호도하기 위해 눈가림 식으로 사안을 처리하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질곡의 늪으로 빠질 수도 있다.
김재수 구조조정위원장이 밝힌 대로 ‘현대를 살리기 위한 명예회장의 마지막 결단’이라면 이 기업의 가부장적 분위기를 고려할 때 몽구 몽헌 두 회장이 비록 가슴 저미는 고통을 감내하더라도 명실상부한 퇴진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이른바 ‘황제경영’의 두 축을 형성하던 사람들이 모두 빠지는 것은 현대의 장래를 위해서 가장 명예로운 희생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런 전제아래 현대 계열사들이 해야 할 일은 기업의 체질개혁이다. 외부에 비쳐진 현대그룹은 막무가내식 추진력을 가진 독선적 기업이었지만 그런 경영방식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세상이 된 만큼 현대는 투명하고 합리적인 경영방식으로 고객과 주주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현대의 이번 발표는 기업정상화 작업의 시작에 불과하다. 워낙 큰 일이라 실천과정에서 해야할 일이 산더미같이 많고 그 과정에는 오늘의 결단을 내리기까지 보다 더 큰 고통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극복하고 약속을 지켜 기업을 회생시키는 것만이 현대를 아껴 온 국민에 대한 보답이며 창업자의 큰 공로를 지킬 수 있는 임직원들의 마지막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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