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內紛]3父子 퇴진 정부 입김說

  • 입력 2000년 6월 1일 19시 30분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의 ‘3부자 동반 퇴진’을 정부는 정말 사전에 몰랐을까. 그리고 퇴진이 순전히 현대의 미래를 위한 정명예회장의 ‘독단적’ 결정이었을까.

이용근 금융감독위원장은 1일 오전 9시 기자간담회를 자청, “정씨 3부자 퇴진을 김재수 구조조정본부장의 방송 발표를 듣고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이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집무실을 찾아온 일부 기자들에게 “정명예회장의 나이를 생각해볼 때 무리하게 (기업지배구조 개선 부분을) 관철시킬 필요가 없다”고 답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같은 발언은 또 다른 정부 고위관계자의 설명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익명을 요청한 이 관계자는 1일 “정명예회장이 현대 발표 하루 전인 지난달 30일 측근을 통해 ‘나만 물러나면 되는 것이냐’고 물어왔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정부는 재벌오너들의 황제경영을 종식시키는 데 주력해 왔으며 ‘정명예회장만의 퇴진은 황제경영을 대물림하겠다는 의도로 시장이 받아들일 것’이라는 입장을 전했다”고 덧붙였다. 3부자 퇴진에 정부의 입김이 강하게 개입됐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위원장의 31일 행적도 베일에 가려져 있다. 이위원장은 지난달 31일 오전 11시쯤 갑자기 여의도 금감위 건물을 나선 뒤 하루 종일 취재진과 연락을 끊었다. 1일 기자간담회에서 “개인적 볼일이 있었다”고 해명했지만 설득력이 약하다. 이위원장은 1일 간담회에서 정몽구 현대자동차회장의 반발에 대해 “경영능력만 있다면 별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가 이를 전면 취소했다. ‘정부가 몽구회장을 지지하는 것인가’라는 해석이 나왔기 때문. 금감위 관계자는 “이위원장 발언을 뒤집어보라”고 말해 정부가 몽구회장의 경영능력을 불신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이위원장 등의 행적과 발언 취소, 또 다른 정부 관계자의 발언을 종합해보면 정부는 물밑에서 3부자 퇴진에 개입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몽구회장측의 반발이 거세 현대 자구안의 ‘약발’이 떨어질 기미가 보이자 1일부터 이같은 ‘의지’를 서서히 드러내 압박하는 것으로 보인다.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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