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근 금융감독위원장은 1일 오전 9시 기자간담회를 자청, “정씨 3부자 퇴진을 김재수 구조조정본부장의 방송 발표를 듣고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이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집무실을 찾아온 일부 기자들에게 “정명예회장의 나이를 생각해볼 때 무리하게 (기업지배구조 개선 부분을) 관철시킬 필요가 없다”고 답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같은 발언은 또 다른 정부 고위관계자의 설명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익명을 요청한 이 관계자는 1일 “정명예회장이 현대 발표 하루 전인 지난달 30일 측근을 통해 ‘나만 물러나면 되는 것이냐’고 물어왔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정부는 재벌오너들의 황제경영을 종식시키는 데 주력해 왔으며 ‘정명예회장만의 퇴진은 황제경영을 대물림하겠다는 의도로 시장이 받아들일 것’이라는 입장을 전했다”고 덧붙였다. 3부자 퇴진에 정부의 입김이 강하게 개입됐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위원장의 31일 행적도 베일에 가려져 있다. 이위원장은 지난달 31일 오전 11시쯤 갑자기 여의도 금감위 건물을 나선 뒤 하루 종일 취재진과 연락을 끊었다. 1일 기자간담회에서 “개인적 볼일이 있었다”고 해명했지만 설득력이 약하다. 이위원장은 1일 간담회에서 정몽구 현대자동차회장의 반발에 대해 “경영능력만 있다면 별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가 이를 전면 취소했다. ‘정부가 몽구회장을 지지하는 것인가’라는 해석이 나왔기 때문. 금감위 관계자는 “이위원장 발언을 뒤집어보라”고 말해 정부가 몽구회장의 경영능력을 불신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이위원장 등의 행적과 발언 취소, 또 다른 정부 관계자의 발언을 종합해보면 정부는 물밑에서 3부자 퇴진에 개입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몽구회장측의 반발이 거세 현대 자구안의 ‘약발’이 떨어질 기미가 보이자 1일부터 이같은 ‘의지’를 서서히 드러내 압박하는 것으로 보인다.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