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內紛]"어느쪽이 왕회장 뜻 잘못 읽고 있나"

  • 입력 2000년 6월 1일 19시 30분


정주영(鄭周永)현대 명예회장 등 세 부자 퇴진이 전격 발표된 다음날인 1일 정몽구(鄭夢九)회장 정몽헌(鄭夢憲)회장측의 반응은 대조적이었다. 정몽구회장이 이끄는 현대자동차는 이사회를 열어 그의 대표이사 회장직 유지를 결의한 반면 정몽헌회장은 6개 계열사 이사직을 사퇴한다고 밝혀 정명예회장의 발표를 뒷받침했다. 현대 직원들은 회사 곳곳에서 삼삼오오 모여 얘기를 나누며 고위층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도 내부 분쟁으로 인해 ‘현대 맨’으로서의 명예가 실추되고 자존심이 꺾이는 데 대해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정몽헌회장은 1일 출근하자마자 측근을 불러 ‘명예회장의 뜻에 따라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겠다’는 내용의 발표문을 구술해 작성하고 친필 사인을 한 후 발표하도록 지시. 곧이어 현대건설 대표이사 등 6개 계열사 이사직 사직서를 제출하는 등 속전속결로 처리. 측근들은 몽헌회장이 앞으로 12층 회장실로 출근하지 않으며 회장실도 정리할 것이라고 발표. 반면 현대자동차는 이사회를 열고 몽구회장의 현대자동차주 대표이사 회장직 유지를 결의해 퇴진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입장을 재확인.

○…몽구회장측은 이날 오전 몽헌회장의 자필 사직서가 전격 발표되자 당초 오전 10시경으로 예정됐던 퇴진 거부 발표를 1시간 가량 미루며 누가 발표할 것인지를 놓고 고심. 현대차 관계자는 “정몽헌회장이 수용한다는 입장을 적극적으로 밝힌 시점에서 자칫하다간 여론의 몰매를 맞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 결국 오전 11시반경 홍보담당 임원이 기자들 앞에서 발표문을 죽 읽어 내려가는 것으로 ‘조촐하게’ 발표. ○…현대차측은 몽헌회장의 사직서에 ‘어느 아버지가 똑똑한 아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고 싶지 않겠느냐’는 표현이 있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시. 현대차의 한 임원은 “똑똑한 아들이 자신을 지칭하는 것이냐”면서 “아들들도 아니고 아들이라고 표현했는데 학벌로 따져도 자신보다 훨씬 잘난 아들이 많다”고 지적.

○…현대 내부에서는 정명예회장이 지난달 31일 사옥에 나와 몽구 몽헌회장을 불러 ‘뜻’을 전달했음에도 양측에서 엇갈린 해석이 계속되자 “누가 명예회장의 뜻을 잘못 읽고 있느냐”며 설왕설래. 일부 직원들은 “명예회장이 다시 사옥에 나타나야 되느냐”며 의사전달이 제대로 안되는 상황에 다소 허탈한 표정을 짓기도.

<구자룡·홍석민·김승진기자>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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