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걸린 국내업계〓중국이 한국산 휴대전화와 폴리에틸렌에 대해 수입중단 조치를 취한다는 소식이 알려진 8일 현대석유화학 수출팀에는 비상이 걸렸다. 이 회사 주력품목인 폴리에틸렌의 최대 수출시장이 바로 중국이기 때문. 연간 1억달러씩 내보내고 있다. 수출팀 직원들은 “중국 수출 물량이 취소되지 않을지 모르겠다”고 걱정스러운 표정들을 지었다.유화업계에 따르면 폴리에틸렌 제품에 대해서는 이미 선적에 들어가 운송중인 물량은 물론 통관대기 중인 물량도 수입 중단조치가 내려진 상태. 한국은 지난해 4억7000만달러어치의 폴리에틸렌을 중국에 수출했다.
삼성전자 팬택 등 유럽방식(GSM) 단말기 및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중국에 수출하는 휴대전화 업체들도 진상 파악에 나서는 한편 긴급대책 마련에 들어가는 등 바쁜 움직임을 보였다. 지난해 대중국 휴대전화 수출액은 4100만달러이지만 급증하는 추세.
휴대전화에 대한 수입금지 조치는 특히 수출전선에 미칠 악영향 외에도 무역마찰이 장기화할 경우 중국이 도입하려고 하는 부호분할다중접속방식(CDMA) 시장 진출에 영향을 줄 수도 있어 업계는 더욱 우려하고 있다.
▽왜 마늘인가〓중국은 왜 마늘을 ‘분쟁의 씨앗’으로 삼았을까. 전문가들은 우선 중국이 지난해 농산물 분야에서 6억8900만달러의 흑자를 기록해 공산품 쪽의 적자를 만회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대표적인 농산물인 마늘 수출이 막힐 경우 무역수지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
중국의 한국에 대한 마늘 수출은 올해들어 ‘브레이크’없이 급증했다. 특히 관세율이 낮은 냉동마늘로 가공, 집중 수출하는 편법이 난무하면서 국내시장 점유율은 사상 처음으로 12%를 넘어섰다. 올들어 3월까지 중국산 신선마늘의 수입량은 3t이었지만 냉동마늘로 가공된 수입량은 60배가 넘는 198t에 달했다.
92년 이후 매년 한국에 대해 큰 폭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중국의 입장에서는 ‘마늘’을 무기로 한번 싸움을 걸어볼 만하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여기에는 가을로 예상되는 WTO 가입을 앞두고 미리 한국에 대해 ‘길들이기’를 할 필요가 있다는 측면도 감안된 듯하다.
▽곤혹스러운 정부〓정부는 중국산 농산물로 인한 국내 피해를 방치할 수 없는 입장에서 마늘에 대한 관세 상향 조치는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농림부측은 “특히 마늘은 한국의 입장에서도 ‘상징적’인 품목”이라고 말했다. 우선 마늘 생산농가는 전국적으로 42만4000여가구로 전체 농가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마늘 생산액은 1조원을 넘어서 쌀에 이어 두 번째로 중요한 농산물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농촌경제뿐만 아니라 농민의 ‘자존심’까지 맞물린 상황. 정부 관계자들은 “중국이라고 세계무역기준에 어긋나는 것을 두고볼 수는 없다”고 말한다. 마늘 외에 중국산 건전지와 유리 원료인 소다회 등에 대한 덤핑 여부를 조사중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10억 인구의 막대한 중국시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 곤혹스럽다. 특히 CDMA 진출 등 현안이 걸려있어 본격적인 마찰로 발전하면 수세에 몰릴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하는 시각이 많다.
한 통상관계자는 “중국이 유독 한국의 조치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는 것은 한국과의 교역에서 연간 48억달러(홍콩을 합하면 130억달러)의 적자를 보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한국과의 교역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향후 무역마찰에 대비해 확고한 전례를 만들어 두겠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정부가 8일 긴급경제장관회의에서 중국측의 조치에 대해 유감을 표시하면서도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 의사를 밝힌 것은 이 때문이다.
▽정부 대응의 문제점〓이같은 사정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대응에는 짚어봐야 할 대목이 많다.
우선 통상관련 업무가 부처별로 분산돼 한중 교역 전반을 포괄한 종합적 대응이 미흡했다.
중국 마늘에 대한 세이프가드 조치를 취하는 과정에서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가 통상 주무부처로서 제목소리를 내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중국산 마늘 수입 급증으로 국내 농가의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었지만 중국측의 대응을 포함해 보다 큰 틀의 대처가 필요했다는 지적이다.
“곧 WTO에 가입할 중국이 무리한 행동을 할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는 정부 관계자의 토로는 솔직한 고백이긴 하지만 ‘크게 보지 못하는’ 우리 통상정책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최수묵·이명재기자>mj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