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앞으로 업종을 넘나드는 금융기관간의 합종연횡이 활발해질 것임을 예고한다. 업종이 전혀 다른 두 금융기관이 손을 잡았다는 점과 김석기(金石基)중앙종금사장이 합병 이후 추가인수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점에서 그렇다.
중앙종금은 당초 종금사로 남아 지점 증설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정부의 종금업 발전방안의 내용과 달리 사업확장이 어렵게 되자 합병을 적극 추진하게 됐다. 또 3월말 국제결제은행(BIS)기준 자기자본비율이 6.71%에 불과해 퇴출 위기에 몰려있는 제주은행으로서도 중앙종금과의 합병은 어쩔 수 없었던 선택. 무엇보다 종금업계와 지방은행의 기반 자체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2차 구조조정을 앞서 준비했다는 측면이 강하다.
BIS 자기자본비율이 중앙종금이 11.01%, 제주은행이 6.71%로 단순 합산할 경우 9.86%가 되나 후순위채를 발행한 부분이 추가로 자본으로 인정되면서 합병 후 BIS 자기자본비율이 12.9%로 높아져 자본수지개선 효과도 큰 편이다. 합병사의 자산규모는 4조2791억원.
이번 합병은 형식상으론 대등 합병이지만 중앙종금의 대주주(동국제강)가 합병 후 금융기관의 대주주가 됨에 따라 사실상 중앙종금이 제주은행을 인수한 셈이 됐다.
김석기 중앙종금사장은 “사실상 은행업으로 진출하는 것”이라며 “30여개 제주은행 지점망을 활용해 새로운 개념의 종금 상품을 일반금융고객에게 판매할 계획이며 기업인수합병, 유가증권인수, 벤처투자 등 국내 최초의 투자은행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강중홍(康重泓)제주은행장은 “이번 합병으로 10년간 종금사 업무를 취급할 수 있게 됐다”며 “합병 후 사명에 대해서 추가 검토할 계획이며 이달 말까지 합병을 완료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일단 제주은행과 중앙종금의 합병이 2월 발표한 종금사 발전방향에 부합한다고 보고 합병승인을 요청해오면 승인한다는 방침이다. 필요하다면 정부는 공적자금을 통한 후순위채 인수, 부실채권 인수 등을 검토하기로 했다.
한편 이번 합병으로 다른 종금사의 행보도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동양종금은 투자은행으로의 변신을 가속화할 계획이며 리젠트그룹은 리젠트자산운용 증권 종금 해동화재를 하나의 금융지주회사로 묶어 벤처투자 등의 틈새시장 공략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또 한불종금은 14일 대주주인 프랑스 소시에테 제네랄 관계자가 방한해 향후 계획을 밝힐 것으로 보여 주목되며 일단 긴급수혈을 받은 한국종금은 대주주인 하나은행이 어떤 형태로든 처리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박현진·이나연기자>witness@donga.com
▼중앙종금 김석기사장은 누구?▼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외국의 금융기법을 들여와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금융계의 풍운아. 이번 제주은행과의 합병도 금융계에선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일부에선 ‘깜짝쇼’라고 부를 만큼 한달만에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김 사장은 서울대 상대 출신으로 미국 하버드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30대에 월가에 진출했다. 월가출신으론 일찌감치 국내에 들어와 삼천리창업투자 동방페레그린증권 한누리증권 중앙종금 등을 창업하거나 인수하면서 금융가의 화제를 몰고 다녔다.
노태우 전 대통령과 사돈인 동방유량 신명수 회장이 홍콩페레그린과 합작으로 동방페레그린증권을 설립할 때 실무역할을 맡기도 했다.
97년9월 한누리증권 사장으로 취임했으나 대주주인 아남그룹과 지분인수를 둘러싼 분쟁으로 해임된 후 작년 5월 동국제강이 대주주인 중앙종금 사장에 전격 영입됐다. 하지만 취임후 불과 열흘만에 미화 2700만달러를 해외로 빼돌린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으며 이후 벌금형으로 풀려났다.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의 맏손녀와 이혼한 뒤 연극배우 윤석화씨와 재혼하고 모 방송국에서 경제프로 진행을 맡아 세간의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김 사장은 “증권사를 자회사로 설립하는 방안은 계속 추진하고 앞으로 다른 금융기관도 더 인수할 것”이라고 말해 종합금융그룹 설립에 대한 포부를 감추지 않았다.
<김두영기자>nirvana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