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직 채용의 선두는 삼성물산이다. 이 회사는 창립 이후 줄곧 순혈통주의를 강조해왔다. 모든 사원을 신입직으로 뽑아 회사가 원하는 방식으로 교육시켜 삼성맨으로 육성해온 것이다. 삼성 공채 출신이 아니면 사람 행세도 못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던 삼성물산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이 회사는 올 들어 총 188명을 신규채용했다. 이중 대학을 갓 졸업한 신입사원은 90명에 불과하고 경력사원이 98명을 차지했다. 삼성으로서는 가히 혁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파격이었다. 인사팀 김석규과장 스스로도 “혁명적인 채용 관행 변화”라고 말할 정도.
경력선호 선풍은 LG화학에서도 이어졌다. 이 회사는 금년에 300명을 뽑았다. 이 중 대졸신입사원이 200명이고 경력사원은 100명. “외인부대가 너무 많아 기업문화가 흔들린다”며 “경력사원 모집을 줄여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
경력사원을 가장 선호하는 업종은 인터넷업계와 광고업계. 대홍기획은 올 상반기 신규채용 중 경력 대 신입 비율이 7:3이며 제일기획은 경력 대 신입 비율이 5:5. 인력이동이 많은 SI업체인 현대정보기술은 금년 신규채용의 경력 대 신입 비율이 7:3. 삼성SDS, LG-EDS도 사정은 마찬가지.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이들 업체의 신규채용 비율은 경력대 신입이 2:8 정도였다.
직원이동이 거의 없는 포항제철도 지난해 신입 대 경력 비율이 9:1이었으나 금년에는 7;3으로 변했고 정년 퇴직자가 대거 나오는 2003년부터는 경력사원 모집을 크게 늘릴 계획.
기업들은 왜 이렇게 갑자기 경력사원을 많이 뽑는 걸까. LG화학 인재개발팀 권석용부장은 “인력 외부 유출이 많아지면서 경력사원이 필요한 이유도 있지만 조직에 대한 충성보다 개인의 업무능력이 중요해지고 수시채용이 많아지면서 회사측이 3년 이상 교육해야 업무성과가 나오는 신입사원보다 바로 업무를 볼 수 있는 경력사원을 선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규채용 권한이 인사부에서 각 사업부로 넘어간 것도 중요한 이유.
리쿠르트 손창환이사는“각 사업부가 수익률에 따라 평가를 받기 때문에 각 사업부는 소유 정예 원칙에 따라 경력직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기업 현장에서는 연봉 2000만원의 신입사원 3명보다 연봉 3000만원의 경력사원 2명 혹은 연봉 6000만원의 사원 1명이 생산성이 높다는 것.
이런 흐름을 노동연구원 동향분석실 강소희실장은 “아직 초기단계지만 국내 노동시장이 미국처럼 신입사원 중심에서 경력사원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요약한다.
인사전문가들은 취업준비생들에게 대기업의 채용패턴 변화에 맞추어 취업준비 전략도 바뀌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특정회사 입사’를 목표로 삼지 말고 ‘앞으로 어떤 일의 전문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갖고 인턴십이나 자격증 획득을 통해 적어도 반전문가로서의 소양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LG경제연구원 송계전박사는 “대기업 입사에 실패하면 일단 중견기업에 입사해 경력을 쌓고 전문가로 성장, 한 단계 높은 직장으로 옮기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자신의 경력 관리를 일찍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병기기자>ey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