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부 출범 후 최근까지 경제정책의 뚜렷한 특징은 미국식 자본주의 논리가 빠른 속도로 확산된 점. 해외자본 압력을 의식한 철저한 시장논리의 도입, 부실기업과 금융기관의 조기퇴출 및 매각 등은 이를 보여주는 구체적 사례였다.
물론 국제통화기금(IMF)체제 편입 후 경제정책의 자율성이 축소되고 해외신인도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했던 상황에서 이런 정책은 어느 정도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우리 기업 및 금융기관의 ‘헐값 매각’ 논쟁이 나오고 금융시장에 충격을 미치는 등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
현정부의 경제정책에 큰 영향을 갖고 있는 정부 고위관계자가 밝힌 새 경제정책 방향에는 향후 경제정책 기조를 미국 일변도로 이끌고 가지만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특히 미국식에 일본식 경제정책을 용합하는 방식이 눈길을 끈다.
최근 금융시장의 새로운 불안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는 종금사 처리문제와 관련해 시장논리에 따른 ‘무조건 도산을 통한 퇴출’이 아니라 공적자금 투입 등으로 일단 ‘응급조치’를 취한 뒤 자체 경영정상화나 합병 등을 유도하겠다는 방침은 이를 잘 보여준다.
정부가 참고하고 있는 일본의 경우 97년 가을 야마이치증권과 홋카이도척식은행의 경영위기 당시 미국식 논리를 받아들여 도산이라는 ‘극약처방’을 내렸다. 그러나 이 조치로 금융불안이 오히려 심화된 데 따른 반성으로 98년부터 다른 방식을 택했다. 일본정부는 일본장기신용은행과 일본채권신용은행에 대해서는 특별공적관리(일시 국유화)조치를 취한 뒤 공적자금을 투입, 시간을 두고 다른 국내외 기업에 매각하는 정책을 택해 부작용을 줄였다.
대우자동차 처리방향도 비슷한 맥락이다. 정부는 대우차를 인수할 해외기업을 하나만 선정해 협상하지 않고 복수의 매입희망 업체를 선정해 매각대금 등 협상조건을 최대한 유리하게 이끌 방침이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서울은행 등의 매각 때는 우선 해외신인도 확보가 급해 ‘헐값매각’이라도 해야 했지만 우리 경제상황이 상당히 호전된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대우차 인수문제는 이미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미국 GM과 포드는 물론 자본제휴를 통해 곧 인수전에 뛰어들 현대차+다임러 크라이슬러까지 가세한 ‘3파전’이 막판까지 치열할 전망이다.
<권순활기자>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