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中 통상마찰]정부 무대책에 기업만 '죽을 맛'

  • 입력 2000년 6월 18일 20시 39분


우리는 중국에 무조건 두들겨 맞아야 하는가.

마늘 문제를 둘러싸고 한국과 중국간에 통상마찰이 일면서 중국측이 국제무역기구(WTO)의 규정은 물론 일반 국제 상거래 관행에도 맞지 않는 ‘억지 보복’을 가해 왔으나 우리 정부가 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휴대전화와 폴리에틸렌 관련업체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 이런 추세로 나갈 경우 업계의 피해는 연간 5억달러 수준을 넘어설 전망이다.

중국의 무역 보복이 발동된 것은 6월7일로 오늘로 12일째를 맞는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아무런 대책도 마련하지 못한 채 수수방관하고 있다. 정부의 유일한 대책은 중국과 재협상을 벌인다는 것. 그러나 이 또한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이 와중에 재정경제부 외교통상부 산업자원부 농림부 등 관련부처들은 서로 책임을 전가하는 데만 급급하고 있다.

마늘 분쟁은 사실 관세율 문제에서 발단된 사소한 문제이다. 그러나 이 사건을 잘못 처리하면 중국과의 교역에서 나쁜 선례를 남기게 되어 앞으로 상당한 손실이 우려된다는 점에서 신속하면서도 합리적이 대응이 나와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일방적인 양보는 두고두고 후환을 남길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무역분쟁 대응 체제에 ‘구멍’〓중국의 무역보복이 국제관례를 무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정부의 대응에 단호함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각 부처도 서로 책임을 떠넘기거나 부처이기주의를 주장하는 데만 급급하는 등 ‘분열상’을 드러내고 있다.

일부부처는 이동전화 등의 수출액이 크다는 점에서 섣부른 ‘마늘 포기론’을 제기해 협상자세에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 이 같은 부처간 이견은 국무회의에서도 나타났다. 중국의 무역보복이 발표된 직후 열린 회의에서 일부 국무위원들은 “수출액 면에서 마늘과 이동전화는 큰 차가 있다”며 ‘마늘 포기론’을 성급하게 제기했다가 논란을 빚은 것으로 전해졌다.

분쟁의 당사자인 농림부도 외교 통상의 ‘큰 그림’보다 농민들의 정서에 집착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농림부는 특히 중국이 무역보복에 나서자 의무도입량(MMA)을 마늘은 1만2000t으로, 참깨는 1만1000t까지 확대하겠다는 ‘대안’을 중국측에 제의한 것으로 알려져 ‘눈가림식 협상’을 하고 있다는 빈축을 사고 있다. 통상전문가들은 “이번 사안은 마늘에 국한된 것이 아니며 앞으로 농산물과 공산품 전반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는 한국과 중국간 무역갈등의 신호탄으로 보아야 한다”면서 “지금부터 정부 부처가 일관되게 대응할 수 있는 통상 체제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기업피해 확산〓18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의 폴리에틸렌 제품 수입중단 조치(7일)로 대한유화 LG화학 등 유화업체들이 재고 부담을 겪는 바람에 공장 가동률을 낮추고 있다. 중국 수출비중이 큰 대한유화는 90% 수준이던 공장가동률을 15일부터 75∼80%로 낮췄다. LG화학도 17일부터 공장가동률을 80% 수준으로 낮췄고 삼성종합화학은 이번 주부터 감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현대석유화학과 한화석유화학도 내주부터 10∼20% 감산할 예정이다.

대한유화 이선규 전무는 “중국의 수입중단 조치가 계속되면 공장 가동률을 70% 아래로 낮추는 최악의 상황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폴리에틸렌 제품의 재고가 계속 쌓이자 유럽과 남미지역의 구매처들도 가격하락을 기대하며 구매시기를 늦추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정보통신 등 국내 정보통신 업계는 사태해결이 늦어지면서 그동안 쌓아온 브랜드 이미지가 무너질 것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중국은 이동전화 수요가 연간 3000만대에 이르는 방대한 시장”이라며 “사태가 장기화되면 한국업체는 치명적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LG정보통신 관계자는 “국산 이동전화는 중국시장 점유율 10위권 이내에 진입했다”며 “장 단기를 불문하고 수입금지조치는 시장점유율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수묵·이병기·정영태기자>moo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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