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재계 판도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여왔던 현대와 대우가 유동성 문제로 휘청거리거나 아예 도산함에 따라 우리나라 재계는 삼성이 완전히 평정하게 됐다. 상장사 시가총액중 삼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25%에 달하고 매출액 수익규모 등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한국 최대의 기업으로 부상했다. 우리나라 경제 역사상 한 기업의 비중이 이처럼 높아지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삼성의 독주는 일찌감치 예견된 결과. 외환위기가 닥치기 훨씬 이전인 93년부터 ‘신경영’이라는 모토 아래 기업구조와 재무구조 개선 작업을 진행해왔기 때문이다. 올해 세후 8조원 이상의 순이익을 예상하고 있는 삼성은 디지털 시대 ‘선도 기업’으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굳혀가고 있다. 삼성의 성공 스토리는 경제난 시대에 기업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에 대한 교본이 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독점으로 인한 부작용이 우려되고 있기도 하다.
▽현대 LG SK를 모두 합친 규모의 시가총액〓공정거래위원회가 자산 규모를 기준으로 측정한 삼성그룹의 기업 순위는 현대에 이어 2위. 그러나 기업의 경영력과 잠재력, 미래가치가 반영된 주가를 기준으로 보면 삼성의 상장사 시가총액은 69조740억원(19일 종가 기준)으로 독보적인 1위다. 이는 현대 LG SK 등 나머지 3대 재벌그룹 상장 계열사의 시가총액 합계와 맞먹는 규모. 거래소 시장에 상장된 기업의 시가총액 268조7770억원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액수다.
삼성은 특히 세계 시장에서 시장 점유율 1위인 제품을 12개나 갖고 있다. 5위 안에 드는 제품을 합치면 20개가 넘는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D램(20.7%)은 물론 컴퓨터모니터(14.5%) 초박막트랜지스터액정표시장치(TFT-LCD·18.3%) 브라운관(19%)에다 삼성전관의 진공형광표시관(VFD·25%)까지 숱한 제품들이 ‘월드 베스트’제품.
이같은 성과에 힘입어 삼성은 올해 세금을 제하고도 8조원이 넘는 순이익을 기록할 전망이다. 계열사별로 보면 삼성전자는 반도체 가격 급등과 정보통신 부문의 호황으로 지난해의 두 배가 넘는 7조원의 순이익과 32조원의 매출이 예상된다. 매출액 대비 이익률이 20%를 넘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울 전망.
▽과감한 사업구조와 재무구조 조정의 결과〓삼성은 93년부터 주력 업종을 전자 금융과 무역 서비스 등 3, 4개로 압축하고 계열사를 정리했다. 보광 한일전선 IPC 대한정밀 등 28개사를 계열분리하거나 매각 청산했고 회사 내의 적자사업이나 비주력사업을 과감하게 매각하고 정리했다. 삼성전자의 파워디바이스 사업은 페어차일드에, 방산 사업은 톰슨사에 넘겼고 삼성중공업의 건설기계는 볼보에, 지게차 사업은 클라크사에 팔았다. 그 결과 97년말 59개였던 계열사는 45개로 정리됐고 인력도 16만7000명(97년말)에서 지난해말엔 11만3000명으로 32%가 줄었다. 또 97년 2조3000억원에 달했던 계열사간 상호 지급보증도 지난해말 현재 ‘제로(0)’상태를 만들어 계열사의 독립 경영 체질을 굳혔다.
▽독점에 안주하지 말고 자기와의 싸움 계속해야〓삼성그룹 관계자는 “삼성이 짧은 기간 내에 구조조정을 성공시킨 비결은 93년부터 신경영이라는 개혁 작업을 꾸준히 진행해왔기 때문”이라며 “올해는 삼성 62주년 역사상 가장 큰 이익을 실현한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는 자기와의 경쟁이 중요해졌다. 자칫 자만하거나 독점이라는 지위를 남용하면 나라경제에 큰 부담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훈기자>dreamlan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