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1983년이었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버클리대에서 박사 학위를 딴 안 씨는 한국은행 조사2부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안씨는 우리 경제가 한 차원 더 높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경제의 대중화가 시급하다고 보고 이해하기 쉬운 경제 교과서를 편찬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한국은행 총재의 허가를 얻었다. 최고의 두뇌들이 몰려있던 조사 2부의 과장급과 조사역 등을 모두 참여시켜 분야별로 집필하게 한 다음 안씨가 데스크를 보았다. 1년간의 밤샘 작업을 거쳐 책이 나왔다. 책 이름은 ‘알기 쉬운 경제지표’로 정했다.
이 책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쉬우면서도 논리적이어서 누구든지 읽으면 금세 이해가 됐다. 공무원 금융인 언론인 그리고 기업체 간부 등은 대부분 이 책을 통해 경제에 눈을 떴다. 경제 부처가 몰려있는 경기 과천시에서는 이 책을 모르면 간첩으로 오인받는 일도 생겨날 정도였다. 특히 국제시장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경제흐름을 가장 빨리 소개해 새 이론의 원전이 되기도 했다. 이 책의 성가는 갈수록 더욱 높아졌다. 책 이름도 아예 ‘알경’으로 불렸다. 알기 쉬운 경제지표의 약자이지만 껍질을 까고 안을 들여다볼수록 경제가 더 잘 보인다라는 뜻도 담겨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저자는 잊혀졌다. 한국은행이 기관 이름으로만 발행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최근 창립 50주년을 맞아 ‘알경’ 증보판을 냈다. 이 과정에서 과거의 기록이 나왔다. 주인공이 안승철 당시 조사2부장이라는 사실이 공식 확인된 것이다.
<박원재기자> parkw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