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테크/나의 저금통]"62평 빌라 계약하던 날 눈물이…"

  • 입력 2000년 7월 5일 18시 47분


99년 11월에 62평짜리 빌라를 분양받았다. 분양가는 3억4천만원. 액수로 보면 대단히 큰 규모지만 평생 모아온 돈으로 대금을 지불했다. 분양계약서에 날인하던 날, 93세의 노모는 이제 부자가 된 것 같다며 눈물을 흘리셨다.

71년 노동청 사무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해서 98년말 재경부 차관보로 퇴직할 때까지 28년동안 나는 늘 적자인생이었다. 월급은 부모님 생활비와 방세를 제하고 나면 언제나 부족했다. 70년대 중반 이같은 처지를 안타깝게 생각한 나웅배 전 부총리(당시 해태제과 전무로, 손위처남의 친구임)이 응암동에 가게를 내줘 해태 대리점이라는 간판을 건 채로 아내가 통닭집을 운영했지만 손해만 보고 1년만에 문을 닫았다. 경제기획원 사무관과 이화여대 출신 부인이 하는 통닭집이라는 소문이 시장통에 퍼지면서 처음 2∼3개월 동안은 하루에 통닭 20∼ 30마리가 팔리기도 해 금새 부자가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나중에는 하루에 1마리밖에 못팔 때도 많았다. 저축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내가 경제적 기반을 마련한 데는 두차례의 외국생활과 임대빌라에 거주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 주 덴마크 경협관으로 재직하면서 (78 ∼ 81년) 전세자금을 모을 수 있었고, 해외주재관 시절 분양받은 아파트(대치동 우성아파트 31평형)의 입주금도 2년간의 유학생활 끝에 마련할 수 있었다.

97년, 어렵게 마련한 아파트였지만 큰딸 유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처분하고 임대빌라에 입주해야 했다. 당시 아파트 처분가격은 2억8300만원. 딸아이가 전액 장학금을 받게 되면서 서울 강동구 상일동 대림빌라(62평형)를 임대보증금 1억3200만원을 치르고도 1억5000만원이나 남았다. 덕분에 이 돈은 고스란히 은행 정기예금과 비과세저축에 가입할 수 있었다.

97년말 외환위기로 은행금리가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이자가 꽤 많이 붙어 빚을 갚고도 남았다. 만약 31평짜리 아파트에 계속해서 살았다면 주거비용은 연12%의 예금금리를 적용하더라도 월300만원에 달한다. 하지만 임대빌라로 옮기면서 평수는 2배로 늘고, 주거비용은 반(半)으로 줄일 수 있었다. 여기에 정기예금으로 고율의 이자까지 챙길 수 있었으니 내 생애 최고의 성공 재테크인 셈이다.

<반병희기자>bbhe424@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