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S-Oil '폴사인제 폐지' 건의

  • 입력 2000년 7월 23일 19시 32분


국내 정유사 중의 하나인 S―Oil이 현행 폴사인제의 폐해를 지적하며 이를 폐지하라고 정부에 건의한 것은 정유업계 스스로 이 제도가 소비자보다는 정유사들의 이익을 위한 ‘제도적 장치’로 왜곡 운영돼 왔음을 자인하는 ‘고해성사’로 이해된다.

그동안 정유사들은 소비자들이 선택한 석유제품의 품질을 보증하기 위해 폴사인제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으나 S―Oil의 ‘양심선언’으로 이같은 주장이 ‘허구’임이 여실히 드러난 셈이다.

▽말뿐인 소비자보호〓 S―Oil은 우선 현행 폴사인제가 주유소는 물론 소비자의 상품선택권을 심각하게 침해해 왔다고 분석했다.

특히 소비자의 경우 어느 주유소에서나 원하는 정유사의 석유제품을 구입할 수 있어야 하나 그같은 기회를 박탈당해 왔다는 것.

또 폴사인제가 석유시장에서의 점유율을 늘리려는 정유사들의 과당경쟁을 부추겨 주유소가 불필요하게 난립하게 됐고 이에 따라 많은 주유소가 휴폐업하거나 경영부실화를 겪고 있다고 S―Oil측은 지적했다.

사실 92년 5210개였던 전국의 주유소는 99년 1만390개로 늘었고 폴사인제 시행 이듬해인 93년부터 99년까지 매년 평균 480여개의 주유소가 휴폐업한 것으로 드러났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그 결과 일부 주유소들이 경영난 타개를 위해 신나 벤젠 등을 섞은 불량 석유제품을 판매하거나 음성적으로 덤핑유를 거래하는 행태 등을 부추겼다는 것. 이는 본보가 지적한 ‘덤핑유의 구조적 문제점’(6월29일 A3면)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최근 경찰조사에서도 그 실태가 일부 밝혀졌다.

▽정유사의 자가당착〓 S―Oil은 현행 폴사인제가 정유사들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폴주유소를 통해 시장 점유율을 높이려는 정유사들 간의 과당경쟁으로 인해 기술개발 등에 투자돼야 할 자금이 주유소에 대한 무리한 지원으로 흘러갔다는 것. 실제로 95년부터 98년까지 정유사들이 주로 주유소 지원을 위해 사용한 국내유통비는 무려 7조4274억여원에 이르렀다.

또 정유사 간에 공공연히 이뤄지는 제품교환에 따라 타 정유사의 제품을 받아 자사의 첨가제를 혼합한 뒤 마치 자사가 생산한 제품과 동일한 품질인 것처럼 홍보하기 위해서도 불필요하게 많은 돈을 쓰고 있다는 것.

S―Oil 관계자는 “정유사들이 주로 홍보하는 휘발유의 경우 유황함량 벤젠함량 등 품질 구성요소가 정유사 별로 다르다”며 “타사 생산제품에 단순히 연비향상을 위한 첨가제를 섞어 자사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유사들은 이처럼 ‘소비자를 기만하는 광고’에 96년부터 99년까지 한해 평균 426억여원을 지출했다.

▽정유사 간의 파열음〓 이번 S―Oil의 폴사인제 폐지 건의는 그동안 굳건히 유지돼 온 정유사들 간의 담합이 부분적으로 깨질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

석유업계 내부에서는 이번 S―Oil의 폴사인제 폐지 건의가 SK LG정유 등 선발주자들의 시장지배에 후발주자들이 제동을 걸기 위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석유업계의 한 관계자는 “외국 메이저가 본격적으로 국내시장에 진입하고 전자상거래가 본격화하면 어차피 지금과 같은 ‘철옹성 담합’은 불가능할 것”이라며 “국내 정유사들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도 폴사인제를 통한 ‘시장 나눠먹기 구도’는 깨져야 한다”고 말했다.

▼복수 폴인사제란▼

S―Oil이 현행 폴사인제의 대안으로 제시한 이 제도는 주유소로 하여금 여건에 따라 자율적으로 석유제품 공급자(정유사)를 복수로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 주유기마다 각 정유사의 상표를 부착함으로써 소비자들로 하여금 한 주유소에서 가격과 품질에 따라 원하는 정유사의 제품을 구입할 수 있게 하고 또 정유사들의 품질 및 가격경쟁도 촉진하는 장점이 있다.

<이승헌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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