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키를 쥐고 있는 현대건설의 향후 행보에 따라 언제든지 위기가 재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전문가들은 “현대 사태가 잠시 수면 아래로 잠복하는 것으로 봐야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만기연장 배경〓현대건설의 채권은행들이 모든 은행 차입금을 연장해주기로 한 것은 현대건설의 자구 계획이 어느 정도 실현 가능하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현대건설은 1조5000억원의 자구 계획과 2489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려 연말까지 1조852억원의 만기도래 차입금을 갚을 수 있다며 시간을 줄 것을 줄곧 요청해왔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은행 임원은 “은행장들이 현대건설의 자구 계획을 어느 정도 신뢰하는 것 같았다”며 “현대건설이 자구 계획으로 상환자금을 마련하는 시기와 만기도래 시기가 차이가 나는 만큼 협조를 요청해와 이를 수용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또 금융권의 이기주의가 시장을 망친다는 이헌재(李憲宰)재정경제부장관의 지적에 이어 비난 여론이 확산되자 은행 입장으로서는 이를 외면하기가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이번 결정이 사실상 과거의 부도유예협약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라며 현대의 자금위기를 금융권과 현대건설측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시장 안정될까〓은행권이 일단 차입금 만기연장을 해주기로 함에 따라 신용등급 하락으로 불거진 현대건설의 자금난은 일단 진정 국면을 맞게될 전망이다. 그러나 투신 종금 등 제2금융권이 어느 정도 협조할지가 관건.
외환은행 관계자는 “제2금융권이 갖고 있는 기업어음(CP)이 1000억원에 달해 협조가 절실하다”며 “현대측과 전방위 설득을 펼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시장관계자들은 이번 조치가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아니라는 데 입을 모으고 있다. 현대건설의 자구 계획이 조금이라도 차질을 보일 경우 은행의 자금회수 압박은 다시 수면 위로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시장의 분석. 실제 이날 만기연장을 결의한 은행장들도 만기연장 시기에 대해 “현대 자구 노력을 봐가며 결정하겠다”고 밝혀 이같은 분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열쇠는 현대건설에〓현대건설은 26일 지금까지 자구계획 이행실적이 1470억원에 달한다고 밝히면서 향후 부동산 매각의 구체적 일정을 제시해 신뢰 회복에 안간힘을 쏟는 모습.
1조5000억원의 자구 계획중 △방글라데시 시멘트공장(4000만달러) △주택공사개발신탁(2600억원) △광화문사옥 매각(700억원) 등은 8월 10일경에 계약이 완료될 것으로 자신했다.
그러나 2000억원에 달하는 서산농장 처리 문제와 미분양상가 매각 등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것이 은행권의 시각이다. 따라서 현대건설이 얼마나 자구 계획을 충실히 이행하느냐가 은행권의 만기연장을 할 수 있는 관건이 되고 있다.
삼성투신운용의 한 관계자는 “현대건설의 자구 계획을 들여다보면 현대건설 자체 의지만으로는 계획을 이행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현대건설 임종익(林鍾翼)재정부장은 “자구계 획은 채권단과 협의해 실현 가능한 것만 제시한 것”이라며 “연말까지충분히 처리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박현진·정위용기자>witnes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