現重 '각서내용 공개' 파장…이회장 무리한 개입 입증

  • 입력 2000년 7월 27일 19시 15분


외자유치를 둘러싼 현대중공업과 현대전자간 분쟁의 핵심 중 하나인 ‘각서’ 내용이 27일 공개되면서 현대 계열사간 내분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단순히 계열사간 분쟁을 넘어 이익치(李益治)현대증권 회장의 개입의혹으로 비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특히 현대 채권단이 현대의 일부 ‘가신그룹’에 대한 가시적인 ‘인적청산’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현대중공업측도 이회장에 대한 강한 반감을 보이고 있어 이회장 등에 대한 인책론이 커질 전망이다.

▽이익치회장 인책론 대두〓현대중공업측이 이번 사태의 주요 배후인물로 지목하고 있는 이회장의 각서 내용이 밝혀지면서 이회장이 문제의 외자유치에 주도적으로 개입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이회장이 외자유치의 ‘미끼’로 써준 각서는 김영환(金榮煥)전 현대전자사장에게 써준 각서와 김전사장과 연명으로 현대중공업에 맡긴 각서 등 두 가지. 두 각서의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지급보증에 따른 손실이 발생할 경우 이를 보전하겠다는 것. 이는 이회장이 각서형태로 계열사들을 무리하게 끌어들여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외자를 유치했다는 반증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이에 대해 이회장의 한 측근은 “그룹 계열사들끼리 지급보증을 하고 돈을 빌려쓰는 것은 당시에는 일반적 관행이었다”며 “대우사태만 터지지 않았어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회장측은 또 “지금은 정몽준(鄭夢準·MJ)현대중공업 고문이 정몽구(鄭夢九)현대자동차회장쪽을 편드는 것 같다”며 “그룹계열사끼리의 문제를 법적 소송으로 가는 것은 곤란하며 시간을 두고 원만히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정몽헌(鄭夢憲·MH) 가신’ 공격 수위 높이는 MJ측〓정몽준 고문측이 이번 분쟁의 진원지를 이익치회장으로 지목하고 나서면서 갈등구조가 한층 복잡해지고 있다. 당초 지급보증 여부를 둘러싼 현대중공업―현대전자 다툼이 현대중공업―현대증권 구도로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특히 이익치회장 등 정몽헌 현대아산이사회 회장의 가신그룹에 대한 MJ측의 반감이 커지고 있다.

현대중공업과 현대전자간 갈등이 표면화되면서 현대전자는 한 발 빼는 듯한 태도다. 물론 소송으로 이어질 경우 법정에서 열심히 다툰다는 입장이지만 ‘이전투구식 싸움’에는 뛰어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전자 일각에서는 ‘우리도 피해자’라며 현대증권에 대해 못마땅해하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MJ측, 현대그룹과 결별수순 밟는가〓현대중공업은 법정다툼과는 별도로 앞으로 계열사 빚보증을 서지 않겠다고 방침을 정했다. 그룹과의 관계를 실질적으로 청산하겠다는 입장아래 수순밟기에 들어간 것이다. 현대중 관계자는 “계열사에 대한 지급보증 규모가 총 1조45억원에 달한다”며 “만기가 돌아올 경우 재보증을 서지 않겠다”고 밝혔다. 현대중의 이런 방침에는 최근 유동성 위기를 겪은 현대건설에 대한 주 채무보증자라는 시장의 인식을 탈피시키기 위한 의도가 큰 것으로 분석된다.

▽곤혹스러운 MH〓정몽헌회장측 인사들은 MH의 가신들을 청산하라는 현대중공업과 현대 채권단의 요구에 대해 곤혹스러워하면서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현대 관계자는 “가신그룹 청산과 현대의 자구노력은 별개의 사안이며 이해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현대측은 또 “인사는 계열사별로 이사회를 통해 이뤄지는 것으로 그룹에 인적청산요구를 한다는 것은 맞지 않다”며 “자동차 계열분리를 둘러싼 감정이 작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영해·정위용·홍석민기자>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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