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현대해법 초강수 선회…채권단 내세워 압박

  • 입력 2000년 8월 1일 23시 41분


현대 문제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채권단이 1일 현대측에 요구한 내용은 자못 충격적이다. 기존의 어정쩡한 태도를 버리고 강경 노선으로 급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채권단을 이끌고 있는 외환은행이 이날 현대에 전화를 걸어 요구한 사항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계열분리와 자구노력 그리고 오너의 퇴진이다. 이중에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정주영 전 명예회장을 비롯한 ‘3부자의 퇴진’이다. 아무리 채권은행이라고 하더라도 부도가 났거나 워크아웃에 들어가 있는 상태가 아니라면 오너의 퇴진을 요구할 자격은 없다. 실제로 정부와 채권단은 그동안 오너 퇴진 문제만큼은 언급을 자제해왔다. 가신그룹을 쳐내라고 요구한 것이 고작이었다. 이 요구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채권은행이 오너 퇴진이라는 초강수의 요구를 하고 나선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금감위의 한 고위관계자는 “형제간의 싸움이 계속되는 등 지배구조가 엉망인 상태에서는 갱생이 어렵다”며 “3부자 퇴진은 현대 회생을 위한 필수조건이다”고 못박았다.

정부와 현대의 갈등에서 그 이유를 찾는 시각도 있다. 현대는 최근 많은 지원을 받으면서도 금융당국의 요구에는 제대로 응하지 않았다. 현대 때문에 다른 기업의 구조조정에도 차질을 빚을 지경이다. 정몽헌회장은 아예 외국에 나가 정부와의 면담조차 거절하고 있다. 금융당국으로서는 이러한 현대를 움직이기 위해 오너퇴진이라는 카드를 뽑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라는 분석이다. 개각을 앞두고 현안을 청소하자는 뜻도 있을 것이다.

금융기관들은 지난주 현대의 만기도래 채무에 대해서는 무조건 연장해주겠다는 파격적인 지원을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대한 국민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해 의도적으로 강경노선으로 돌아선 것처럼 행동하는 게 아닌가 하는 분석도 없지는 않다.

이유야 어쨌든 오너퇴진에다 금주 내에 계열분리 등 강력한 요구를 함으로써 현대사태는 급물결을 탈 수밖에 없게 됐다. 현대가 불응하면 제재가 불가피할 것이다. 현대는 그러나 ‘스스로 해결능력이 있다’며 ‘간섭말라’고 맞서고 있어 그 귀추가 주목된다.

<김승진기자>sarafi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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