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는 내심 정부가 정치적인 의도로 현대문제를 너무 급하게 수습한다는 불만을 갖고 있다. 그렇지만 “지금은 무조건 정부 요구대로 따라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분위기가 회사 내부에 팽배해 있다. 더 이상 버티거나 머뭇거리다가는 그룹 전체가 공중분해 위기로 치달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현대 관계자들도 잘 알고 있다.
현대측은 더 버티다가 개각 후 자칫 새 경제팀이 현대문제에 더 강경하게 대처할지 모른다는 점을 우려한다. 특히 새 경제부총리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진 김종인(金鍾仁)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과거 현대와 극히 불편한 사이였다.
현대는 실무자들이 정부 및 채권은행단과 먼저 수습대책에 합의한 뒤 주말쯤 귀국하는 정몽헌(鄭夢憲)현대 아산이사회 회장이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장과 정부인사들을 만나 최종담판을 짓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정회장은 또 직접 정주영(鄭周永)전명예회장에게 수습안을 보고하고 허가를 받아야 한다.
현대 관계자는 계열분리안과 관련해 “합법적인 방법을 택하면서도 현대차 지분을 처분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왕회장’의 자동차 지분 9.1% 중 6%를 채권단에 담보로 맡기고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안을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런 분리안이 채택되면 왕회장은 주식을 담보로 빌린 돈으로 현대건설의 기업어음(CP)을 매입해 현대건설 자금난 해결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이 안은 현대측이 자동차와의 연결고리를 끊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왕회장이 수용할지는 불투명하다.
증권가에서 나도는 현대전자 매각설에 대해 현대측은 “죽어가는 건설을 살리기 위해 핵심업종인 전자를 파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강력히 부인한다. 제대로 값도 못 받고 현재 한창 호황을 맞고 있는 현대전자를 팔 이유가 없다는 것. 현대측은 또 이번 수습책에 현대건설의 부채를 1조5000억원 가량 줄일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과 현대중공업 분리를 2003년에서 금년 말까지 앞당기는 안도 포함시킬 것으로 보인다.
<이병기기자>ey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