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측의 발언만을 보면 현대사태는 파국으로 치닫는 것처럼 보인다. 정부는 “워크아웃도 불사한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이에 대해 현대는 “그룹을 해체하라는 말이냐”며 ‘수긍불가’로 맞서고 있다.
정부의 입장은 단호하다. 이용근 금감위원장은 “자리를 걸고 현대문제를 이번에 해결할 것”이라며 “현대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나라경제가 다시 위기에 빠지게 된다”고 강한 어조로 밝히고 있다. 금감원의 다른 관계자들도 “현대가 그동안 이런 저런 방법을 통해 정공법을 회피해왔지만 이번에는 어려울 것”이라며 “정부가 현대에 요구한 3개항은 수정할 수 없는 마지노선”이라고 말했다. 경제 논리 외에 정치환경의 변화도 강경론이 힘을 얻고 있다.
그동안 청와대 내에서는 원칙론을 주장해온 경제논리보다는 “남북경협과 관련, 중요한 역할을 해온 현대를 너무 벼랑으로 몰면 안된다”는 정치논리가 힘을 얻었다. 최근에는 이 구도가 역전이 됐다. 청와대는 현대문제를 마무리짓지 못하면 2차 기업구조조정도 힘들고, 25일 예정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도 성공리에 치를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청와대 재경원 금감원 등은 이런 공감대를 바탕으로 현대를 밀어붙이고 있다.
현대는 “정부의 요구에 무조건 따르겠다”고 말은 해왔으면서도 당초 자신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정부의 수습안이 훨씬 강경한 것을 확인하고 당황해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5일 밤 이용근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계열분리만 하겠다”며 은근히 떠보다가 호되게 혼이 난 뒤 난감해하고 있다. 정부가 건설자구안을 위해 “다른 주식은 물론 현대상선 주식도 매각하라”고 하는 것은 그룹을 해체하라는 뜻이고, 가신그룹 퇴진은 ‘현대의 자존심상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 현대측 입장.
그러나 정면대결은 양측 모두에 심각한 타격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쉽사리 결렬 수순을 밟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현대건설을 워크아웃시킬 때 야기될 파장을 잘 알고 있다. 현대 역시 ‘이번에는 어정쩡하게 넘어가기 힘들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극적인 타협책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실무진은 겉으로 “두가지 안 모두 수용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정몽헌(鄭夢憲) 회장의 결단을 기다리고 있다. 정회장은 모종의 결심을 하고 곧 귀국할 것으로 보인다.
<이병기·최영해기자>ey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