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3부자 동시퇴진 요구]"채권단 속셈 뭐냐" MK측 긴장

  • 입력 2000년 8월 9일 23시 22분


김경림 외환은행장이 9일 ‘3부자 동시 퇴진’을 다시 거론하면서 “정몽구 회장도 물러나야 한다”고 직접 이름을 거명하자 현대자동차에는 비상이 걸렸다.

현대자동차측은 지금까지 정몽구 회장이 3부자 퇴진 선언을 명백하게 거부한 뒤 정부나 채권은행의 사거리에서 벗어난 것으로 생각해왔다.

김행장의 발언만 놓고 보면 ‘정회장이 퇴진하지 않으면 현대측 자구안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자동차에 여신제재를 가하겠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어 현대자동차측이 긴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재계 일각에서는 김행장의 발언을 다르게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김행장이 정회장의 이름을 직접 거명한 것은 신임 경제팀이나 채권단이 정몽헌 회장의 계열사에 대해서만 압박을 가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두 형제간의 다툼에서 정부나 채권단은 중립을 지킨다는 사실을 나타내려는 제스처라는 해석이다.

정몽헌 회장의 측근들은 개각 전까지 “정부와 채권단이 일방적으로 정몽헌 회장에 대해서만 압력을 가하고 있다”며 “현대자동차측이 전방위로 로비를 한 효과”라고 불만을 표시해왔다.

재계는 또 정몽구 회장이 사퇴를 하지 않아도 채권은행이 계속해서 몽구 회장의 이름을 거론하면 자동차측이 부실경영으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정부나 채권단이 과감하게 개입할 수 있는 명분을 축적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현대측의 선(先)계열분리 방안에 대해 외환은행과 정부가 “반대할 이유는 없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 현대사태는 수습의 실마리를 찾은 분위기다.

현대가 결정적으로 시장의 신뢰를 잃게 되도록 작용한 경영권 다툼과 계열분리 약속 불이행이 일단락된다는 긍정적인 신호이기 때문이다.

현대측이 ‘선계열분리안’을 들고 나온 것은 여러 가지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8일 현대사태를 금주 내에 매듭지으라고 지시한 데 대해 ‘성의 있는 화답’을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이번 경제팀은 ‘대화를 할 만한 상대’라는 게 현대측의 판단이다. 전임 팀보다 유연한 입장을 갖고 있는 새 경제팀과 맞서서 좋을 것이 없고 대통령이 직접 언급까지 했는데 계속 버틸 수도 없다는 상황인식이 작용했다는 것.

극심한 자금난을 겪고 있는 현대건설 문제를 해결하려는 실리적인 계산도 엿보인다.

현대측은 자동차 계열분리를 실천하고 중공업 조기 계열분리를 선언하면 계열사들이 시장에서 신뢰를 회복해 자금난을 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자동차 계열분리가 순조롭게 마무리되더라도 현대는 부실 계열사 경영진을 문책하라는 채권단의 요구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현대사태’가 완전히 마무리될지 판단하기는 아직 이른 것으로 보인다.

<이병기·이나연기자>ey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