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줄 막힌 중견기업들 "추석이 무서워"

  • 입력 2000년 8월 20일 19시 19분


금융시장을 짓눌러왔던 현대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지만 금융시장의 분위기는 여전히 무겁다. 금융 및 기업구조조정이 여전히 완전한 매듭을 짓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은행 등 금융기관의 자금중개기능이 아직도 제대로 회복되지 않아 추석과 맞물린 자금 성수기를 앞두고 일부 기업들은 벌써부터 ‘9월 대란설’을 우려하고 있다.

국내외 경제전문가들은 ‘잠재해 있는 기업부실→기업들의 신용리스크 증가→움츠러드는 금융기관→불안한 자금시장→기업 도산→금융기관 부실’의 악순환을 하루 빨리 끊기 위해서는 2년에 걸친 기업 및 금융구조조정을 완결지을 때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최근 자금동맥현상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은행권은 정부의 독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업대출과 기업회사채 매입에 적극적이지 않다. 예컨대 지난주 하나로통신 대한제당 코오롱 등 5개 기업이 회사채 발행에 성공했지만 은행권에서 인수하지 않은 상태다.

또 유동성위기를 겪는 기업을 지원할 목적으로 만든 프라이머리 CBO(발행시장 담보부증권)도 2일 LG증권이 1조5500억원 규모로 발행할 당시에는 투기등급채권을 44% 정도 편입했지만 11일 대우증권이 발행한 4350억원의 CBO의 경우 편입비중이 20%에 그쳤다.

한 중견기업 관계자는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4조7000억원 규모의 투기등급 채권중 30% 정도만이 프라이머리 CBO에서 소화될 것으로 본다”며 “이같은 상황에서 추석 자금 성수기까지 겹치면 중견기업 자금난이 또 다시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실제 국내 굴지의 제약회사인 조선무약이 최근 자금난으로 19일 최종 부도처리돼 이같은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새 경제팀이 자금 성수기를 앞두고 기업자금난을 완화할 단기처방과 연내에 금융구조조정을 마무리할 수 있는 장기처방을 병행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하고 있다.

한국은행 박재환(朴在煥)금융시장국장은 “정부가 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의 탄력적인 운용 등으로 은행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주고 보증회사가 프라이머리CBO를 보증해 실질적으로 투기등급채권을 편입해 줄 수 있도록 하는 단기처방도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금융구조조정을 완결하기 위해서는 기업부실을 해소하는 노력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대부분 경제 전문가의 지적이다.

모건스탠리 서울지점 양호철(梁浩徹)대표는 “기업부실의 정리라는 근본적인 작업을 병행하지 않고는 금융권이 언제든지 다시 부실해질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정부가 밝힌 2차 은행 구조조정 계획을 제대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공적자금의 조성과 각종 제도적 장치를 서둘러 마련해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서울대 정운찬(鄭雲燦)교수는 11일 은행회관에서 열린 금융 구조조정 관련 세미나에서 “금융기관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공적자금 투입은 불가피하다”며 “그러나 공적자금을 투입하고도 그동안 구조조정이 부진했던 것은 정부가 원칙을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정교수는 이를 위해 추가부실이 생길 경우 기업 및 금융기관의 경영진이 부실경영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하는 관련 법규와 제도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흥은행 관계자는 “정부가 설립 예정인 기업구조조정기구(CRV) 관련 법안이 하루 바삐 국회에서 통과돼야 대우 부실채권의 연내 정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박현진기자>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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