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현대가 정주영(鄭周永)전명예회장의 자동차 지분 6.1%를 매각하는 과정에서 채권단을 철저히 배제했을 뿐만 아니라 채권단이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질질 끌려다니는 인상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측이 18일 당초 채권단에 매각하기로 했던 정주영씨의 지분을 3자 매각하겠다고 밝힌 이후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의 입장은 한결 같았다. 현대측이 매각 방식의 변경을 정식으로 통보해 오지 않았기 때문에 공식 입장을 밝힐 수 없다는 것. 다만 계열 분리 원칙에 훼손되지 않는 한 3자 매각도 괜찮은 것 아니냐는 비공식적인 원칙론만 되풀이했다.
외환은행은 21일에도 “현대측의 정식 통보가 없었기 때문에 기존 발표대로 채권단이 정주영씨의 지분을 인수하기 위한 실무 작업을 진행중이며 곧 경영위원회에 이 안을 상정할 계획”이라며 현대측 움직임과는 완전 동떨어진 모습을 보였다. 그 사이 현대측은 22일 ‘비상작전’을 방불케 하는 주식 장내 매각을 성공시켰다. 외환은행측은 이날 부랴부랴 사태 파악에 나섰으나 오후 늦게까지 인수자 명단조차 확보하지 못해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었다.
급기야 행내에서조차 현대 처리와 관련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실정.
외환은행 한 관계자는 “현대 정상화 계획은 채권은행이 현대건설에 대해 수조원의 채권 유예를 해주고 약속한 사안”이라며 “약속한 대로 이행하는지 그렇지 않다면 왜 그런지 분명히 따져야 하는데 ‘자기 밥그릇도 못 찾아 먹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앞으로 계속될 현대의 경영정상화 실행 과정에서도 현대의 말바꾸기가 계속되고 채권단이 이를 묵인하는 사례가 또 다시 벌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당초 외환은행과 현대측이 현대 경영정상화 계획을 합의서로 만들기로 한 방침이 유야무야된 점도 이같은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금융연구원 관계자는 “현대 사태를 주시하고 있는 시장을 의식해서라도 채권단은 앞으로 현대의 약속 이행을 철저히 점검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페널티를 가하는 확실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박현진기자>witnes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