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자본의 ‘한국진출 러시’는 97년말 외환위기를 거치며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외자유치 노력에 금융기관의 주가가 떨어지자 주가상승 가능성을 높게 본 외국자본의 투자목적이 맞아 떨어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외국자본 진출 현황〓미국계 뉴브리지캐피탈이 1년여 협상을 거쳐 자본잠식 상태의 제일은행의 지분 51%를 5000억원에 사들인 것이 대표적인 사례.
독일의 상업은행인 코메르츠은행이 98년이후 7800억원을 투자해 외환은행의 지분 31.6%를 갖고 있다. 미국의 투자은행 골드만 삭스는 국민은행(6000억원,지분 16.8%), 네덜란드 금융그룹은 ING그룹은 주택은행(3000억원,12.7%), 미국의 칼라일 펀드는 한미은행( %,억원), 독일의 알리안츠가 하나은행( %, 억원)에 투자했다.
증권사 인수는 미국의 H&Q 펀드가 98년 쌍용증권을 3700억원에 98년 인수해 굿모닝증권으로 거듭난 것이 본격적 진출의 첫 사례. 이후로 리젠트그룹이 대유증권을 인수해 리젠트증권을, 대만의 쿠스그룹이 조흥증권을 인수해 KGI 증권을 탄생시켰다. 이밖에도 미국의 프루덴셜이 메리츠증권(지분 25.33%),국제금융가의 큰 손 조지 소로스의 헤지펀드인 퀀텀펀드가 서울증권(20.3%)을 사들였다.
보험도 외국자본의 ‘대공습’의 사각지대가 아니다.
독일의 대형보험사인 알리안츠는 국내업계 4위인 제일생명을 인수해 시장을 빠르게 키워가고 있다. 제일투신증권도 푸르덴셜에 지분 51%를 5000억원에 팔았다..
▽투자방식은 제각각〓외국자본은 한국투자에서 기대하는 것은 당연히 높은 투자이익 회수. 그러나 기관별로 투자기간과 방식에서 뚜렷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H&Q, 뉴브리지캐피탈, 칼라일펀드 등은 돈을 빌려 기업을 인수하는 ‘레버리지 바이아웃 (LBO·leverage buy―out)’ 기법을 활용한 M&A에 적극적인 경우. 빌린 돈을 투자한 탓에 경영진을 몽땅 교체해 경영정상화 시도하고 주가가 오르면 주식을 팔고 가능하면 빨리 한국을 떠날 수 밖에 없다.
한 미국계 투자은행의 이사는 “펀드의 생명이 길어야 10년인 만큼 펀드 경영자들이 투자한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는 적어도 5―7년이면 투자수익을 올리기 위해 빠져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골드만 삭스, 코메르츠은행 등 국내 은행 지분의 15―25%를 ‘단순히 투자목적’으로만 인수했다. 기존 경영진이 자생적으로 실적을 내 주가가 오를 것으로 철저히 믿고 맡기는 형식이다. 두 은행이 국민은행, 외환은행은 이사진 1―2명만 두거나 뒀을 뿐이다. 미국의 BOA가 82년 한미은행의 지분을 사들인 뒤 20년 가까이 머문 것처럼 투자기간이 상대적으로 길다.
마지막으로 알리안츠 푸르덴셜 ING 등은 주가상승에 따른 수익확보 보다는 은행이나 보험사 인수를 통해 국내 보험시장 진출에 필요한 교두보를 손쉽게 얻기 위해 투자한 경우다.
▽금융그룹을 향하여〓2∼3년간 국내에 진출한 외국 자본은 은행,증권,보험,투신,종금 등 각 금융분야에 다양하게 진출해 금융그룹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도 특징.
영국계 리젠트그룹은 ‘금융 수퍼마켓’ 구축에 가장 적극적인 해외 자본이다. 증권 보험 종금 등 이미 5개 법인을 갖고 있다. 리젠트의 국내 지주회사인 ‘코리아 온라인 리미티드(KOL)’측은 “영국 본사의 인터넷사업은 장난감 잡화 등의 판매에 그쳤지만 한국에서 종합금융서비스 사업을 위해 한국을 최대 해외투자처로 꼽고 있다”고 밝혔다.
대표적인 소매금융기업인 씨티그룹도 살로먼스미스바니증권과 벤쳐투자사로 사업영역을 확대한 상태.미국의 AIG그룹은 기존의 보험사업 외에도 올 6월 현대투신을 9000억원에 인수키로 해 국내 자산운용 시장에서 돌풍을 예고하고 있다.
<김승련기자>srkim@donga.com
▼국내업계 수성 안간힘▼
외국계 금융기관들의 국내시장 공략에 대항해 국내 금융기관들은 사활을 건 일전을 벼르고 있다.
다들 ‘수성(守城)’을 자신하고 있지만 내심 잔뜩 긴장하고 있는 모습이다. 어차피 텃밭에서 외국 금융기관들의 룰과 무기로 전개되는,‘얼마나 덜 잃느냐’의 게임이기 때문에 조금도 안심할 수가 없는 것이다.
▽외로운 싸움〓정부는 후진적인 국내 금융산업 구조를 선진화시키기 위한 유력한 방안으로 외국계 금융기관들의 안방 침입을 어느정도까지는 허용한다는 입장.
예컨대 재벌의 금융기관 지배를 막으면서 은행 민영화를 추진하는 묘안으로 외국인의 국내 은행 소유를 허용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중이다. 정부는 또 국내 투신(운용)사들이 투자자들로부터 신뢰를 잃은 것이 자금시장 경색의 결정적인 배경으로 보고 국내 투신(운용)사에 대한 외국인의 지분 참여를 통한 선진기법 수혈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국내 투자자나 소비자들도 적어도 금융기관이나 금융기관에 대해서는 ‘신토불이(身土不二)’의 시각을 버린 지 오래다. 최근 국내에서 영업중인 외국 금융기관들의 시장 점유율이 급증하고 있는 데서도 국적보다는 상품의 질을 먼저 따지는 이들의 행태를 읽을 수 있다.
▽업종별 대응방향〓외환위기 이후 위험관리에 눈뜨기 시작한 국내 금융권은 대출심사, 자산건전성 분류 등에서 선진국의 기준을 속속 도입하고 있다.
은행 영업에 있어서도 덩치가 이익으로 연결된다는 ‘규모의 경제’시각에서 고객당 수익을 최대한 창출하는 효율성의 시각으로의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부유층에 대한 집중공략, 고객의 기여도에 따른 차별 대우 등이 단적인 사례들이다.
보험사들은 ‘아줌마 부대’를 주력으로 활용하던 과거의 수공업적 방식에서 벗어나 선진국형 상품개발과 고객관리에 나서고 있다.
특히 보험에 대한 인식이 ‘저축수단’에서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한 보장’으로 바뀌면서 고객기반이 급속도로 넓어지고 있는 보장성보험 시장 공략을 서두르고 있다.
그 결과 과거 푸르덴셜생명, 네덜란드생명 등 외국 보험사들의 독무대였던 종신보험시장에서 삼성생명 등 국내보험사들이 약진을 거듭하고 있다.
이미 국내업체들끼리 수수료 인하 출혈경쟁을 벌이고 있는 증권업종에서도 대형 증권사들을 중심으로 맞대응 채비가 한창이다. 리서치 능력 강화와 종합자산관리 서비스 등 선진 영업기법 도입 등이 주요한 방향이다.
투신권도 지금까지 형식적으로 운영돼온 펀드매니저의 자산운용에 대한 내부 감시시스템을 활성화시키고 안정적인 수익률을 낼 수 있는 위험관리형 상품을 집중 개발 및 판매하는 등 소비자들의 욕구 및 시장 상황 변화에 발맞춰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철용기자>lc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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