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로서는 국민투신을 인수하면서 생긴 부실을 한꺼번에 털 수 있는 기회가 됐지만 후순위전환사채를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는 기간 동안에 총력전을 펼쳐 경영정상화의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이익치(李益治)현대증권회장으로서도 실패한 경영인이라는 불명예를 벗고 명예퇴진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지만 금융권의 반응은 실현가능성에 반신반의하는 의견이 적지 않다.
▽현대 금융회사 실질경영은 AIG로〓당장 현대금융회사의 지주회사 노릇을 해온 현대증권이 AIG에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 AIG가 투자한 현대증권 후순위 전환사채 5000억원어치를 모두 보통주로 전환하면 현대증권 지분 23.7%를 갖게 된다. 이는 현대증권 기존 1대주주인 현대상선(16%)보다 훨씬 높고 다른 현대그룹 계열사 지분과 우리사주 지분을 합쳐도 20%를 넘지 않기 때문에 최대주주는 AIG가 차지하게 된다. AIG는 현대투신운용 지분을 50%+1주 소유하게 되기 때문에 투신운용을 장악하고 부실한 현대투신증권은 자동적으로 AIG 품으로 들어오게 된다. AIG그룹은 투신과 증권을 모두 통합하는 종합금융회사로 한국에 진출한다는 복안을 세워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면계약 의혹〓이번 거래에 대한 의문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투자금액이 1조1000억원에 이르는 ‘대규모’라는 점이 일단 파격적이다. 통상 외국 금융회사와 거래할 때 후순위전환사채는 외화차입용으로 많이 쓰여지는 게 관례. 보통주 전환조건이 있기는 하지만 국내에서도 인수하지 않으려하는 후순위채에 AIG가 5000억원어치나 투자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27일 현재 현대증권 시가총액 1조1952억원을 감안하면 AIG가 투자한 5000억원은 지금 시세(20% 취득 때 2390억원)보다 2배나 높은 것이다. 경영권 프리미엄이 붙어 있다 해도 너무 비싸지 않느냐는 지적이다. 또 현대투신증권은 자본잠식액이 1조2000억원으로 현 상태로서는 정상영업이 버거운 상태인데 우량회사를 덤으로 끼워준다 해도 마다할 마당에 추가로 3000억원을 더 넣는다는 점도 의문이다.
▽전례에 비춰보면 파격적인 거래〓증권가에서는 현대투신과 유사한 사례로 프루덴셜로부터 5000만달러를 유치한 제일투신을 꼽고 있다. 현대투신에 비해 부실이 훨씬 적은 제일투신이 증권과 투신운용 지분을 50%나 내놓으면서 받은 돈이 불과 600억원 수준인데 현대에 넣는 돈이 1조1000억원이라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것. 알리안츠그룹이 하나은행에 투입한 돈도 1000억원에 그친다. 97년 현대전자 외자유치 때 현대중공업이 지급보증을 섰던 나쁜 전례를 안고 있는 현대로서는 증권가의 이 같은 지적들을 해명해야 할 과제를 안게 됐다.
▼전환옵션부 후순위채권▼
채권 발행회사의 변제력에 문제가 생겼을 때 후순위채권자는 돈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가장 나중에 주어지는 대신 금리는 상대적으로 높게 받는다. 현대증권이 발행한 채권은 나중에 보통주로 바꿀 수 있도록 돼있지만 전환기간과 이율은 언급되지 않았다.
<최영해기자>money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