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치회장 사퇴 배경]매 맞기전 '명예퇴진' 선택

  • 입력 2000년 8월 31일 00시 21분


‘금융계의 풍운아―이익치.’

외환위기 후 바이코리아 돌풍을 몰고 온 이익치(李益治)현대증권회장이 증권무대에서 사라진다. 69년 현대건설에 입사해 엔지니어링 중공업 해상화재 등을 거쳐 96년 현대증권 사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증권계에 입문한 지 4년 만에 여의도의 ‘리틀 정’(정주영 전현대명예회장을 빗댄 별칭)이 금융당국의 압박을 받고 백기(白旗)를 들었다.

이회장이 자진사퇴를 선언함에 따라 현대 금융회사는 경영권을 외국사에 넘긴 데 이어 구조조정도 급물살을 타게 됐다.

▽야누스의 두 얼굴〓금융당국은 이회장을 현대문제의 뿌리로 보는 시각이 많다. 반면 증시 일각에서는 ‘나라를 구한 증시 전도사’로 불린다. 그에 대한 평가는 이처럼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그는 외환위기 후 바이코리아펀드를 만들어 2005년 종합주가지수 6000포인트라는 ‘이익치 주가’ 환상을 심어줬다. 증권계 4년 동안 그는 채권―주식―역외펀드―바이코리아펀드 등으로 현대증권을 1위로 올려놓기 위해 온몸을 던졌다.그러나 증시 상황이 따라주지 않아 ‘실패한 경영인’의 오명을 쓰게 됐다.

▽왜 물러났나〓이회장 자진사퇴는 출국 전 이미 예정된 것. 현대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으로 지목된 이회장은 채권단과 금감원의 양면 압박에 굴복해 ‘깨끗하게 물러난다’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금감원은 당초 18일 증권선물위원회를 열어 이회장 문제를 처리할 생각이었지만 외자유치를 매듭짓고 명예퇴진할 수 있는 말미를 줬다. 이회장도 현대그룹의 실질적 오너인 정몽헌(鄭夢憲)현대아산이사회 회장과의 협의를 거쳐 금감원 징계를 받기 전에 명예퇴진을 선언해 운신의 폭을 넓히려 한 것으로 보인다. 이회장이 현대아산이나 현대상선 등으로 옮겨 대북사업을 맡을 것이라는 전망도 이같은 배경에서 나오고 있다.

▽금감원 징계는 어찌되나〓김영재(金暎宰)금감원 부원장보는 “이회장 문제는 이사회와 주총에서 결정될 문제”라며 “이회장이 자본시장에 미친 영향은 공도 있고 과도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이회장이 97년 CIBC(캐나다왕립상업은행)로부터 현대전자의 외자유치를 주도하면서 저지른 범법행위에 대해서는 이회장 거취와 상관 없이 ‘원칙대로’ 처리한다는 방침. 해임 권고를 하겠다는 방침에는 변함없지만 본인이 나가겠다고 밝힌 이상 검찰 고발 여부에 대해서는 고민해보겠다는 입장.

▽가신그룹 거취 여부 관심〓금감원은 이회장의 자진사퇴를 현대그룹 구조조정의 청신호로 보고 있다. 가신(家臣) 3인방으로 분류된 이회장 퇴진으로 김재수 구조조정본부장과 김윤규 현대건설 사장도 결코 편안하지 않은 처지가 됐다. 금감원 고위관계자는 “이회장 퇴진은 현대 내부 구조조정이 불가피하게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시그널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이회장이 현대증권에서는 완전히 떠날 것으로 보고 있다. 그가 금융에서 손을 떼고 대북사업에만 전념한다는 구상을 믿어보겠다는 것.

그러나 이회장 퇴진이 끝은 아니다. 금감위 고위관계자는 “이회장 한 사람이 물러났다고 현대그룹 지배구조 문제가 말끔히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며 “현대그룹이 철저한 자구노력과 함께투명한 의사결정 확립 등 내부 개혁에 힘을 쏟아야 시장의 신뢰를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병기·최영해기자>money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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