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만 살아남는다"…업종 선도기업 급부상 추세

  • 입력 2000년 8월 31일 18시 32분


‘라이벌은 없다. 업종을 장악하는 선도기업만이 있을 뿐이다.’

선단식 그룹경영체제가 흔들리면서 풍부한 현금 흐름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시장지배력을 구축하는 개별기업들이 급부상하고 있다.

자금과 소비자수요, 인적자원이 이들 선도기업으로 집중되면서 ‘2위 기업군’과의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국내 재벌순위에 그룹단위가 아닌 ‘내수 장악형’ 선도기업이 상위권에 포진하는 시기가 멀지 않았다는 전망이다.

▽선도기업의 현주소〓롯데칠성 태평양 신세계 하이트맥주 한국타이어 금강고려화학 등은 각 업종 내에서 선도기업으로 분류된다. 시장점유율 상승→대폭적인 실적호전→현금유입의 급격한 증가→차입금 상환에 따른 이자비용부담 감소→신규투자자금 자체조달 등의 경로를 거쳐 시장지배력을 강화하고 있다. 또 올 상반기 대폭적인 실적호전에 힘입어 상환일정을 앞당겨 차입금을 갚아나가고 있다. 태평양의 경우 순차입금이 96년 2506억원에서 올해는 36억원 수준으로 대폭 떨어질 전망.

영업활동을 통해 축적한 현금이 풍부하다는 점도 강점으로 꼽힌다. 부동산이나 유가증권 매각을 통해 얻은 일시적인 이익(특별이익)이 아니라 매년 반복되는 영업활동에서 대규모의 현금조달이 가능하기 때문에 금융기관에 손을 벌릴 필요가 별로 없다.

작년말 기준으로 △롯데칠성 1646억원 △태평양 1700억원 △하이트맥주 1889억원 △한국타이어가 1423억원가량의 현금을 확보했다.

▽벌어지는 격차〓내부유보된 풍부한 현금을 기반으로 적극적인 시장공략을 펼친 결과 선도업체의 시장점유율은 상승일로에 있다.

롯데칠성의 경우 해태음료 인수 이후 시장점유율이 작년 36% 수준에서 최근엔 41%대로 증가했다. 금강의 고려화학 흡수합병으로 탄생한 금강고려화학은 국내외 영업망이 통합되면서 △건자재 50%(1위) △판유리 40%(2위) △안전유리 39%(2위) △도료 25%(1위) 등 각 부문에서 1, 2위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하이트맥주는 52%의 점유율로 2위인 OB맥주(33%)를 멀찌감치 따돌렸다.

은행업종도 예금보호한도가 축소되는 2001년엔 3, 4개 우량은행이 시중자금을 독식할 가능성이 높다.

마이애셋 리서치센터 구자균이사는 “신용경색이 심화된 이후 금융기관들은 재무적 위험이 거의 없는 선도기업에 저리의 자금을 대주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며 “승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는(Winner takes all)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추세〓선도기업의 부상은 IMF관리체제가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는 분석이다. 즉 IMF체제라는 혹독한 시련기를 거치면서 자금력이 취약한 2위권 기업의 영업은 크게 위축된 반면 시장선도기업은 진입장벽 철폐, 가격담합 등 카르텔체제의 붕괴를 틈타 시장지배력을 공고히 한 것.

리젠트자산운용 이원기사장은 “IMF체제는 시장참가자들에게 ‘시장은 위험하다’는 인식을 심어줬으며 그 결과 시장지배력과 재무적인 안정성을 갖춘 소수의 우량기업에 투자재원이 집중됐다”고 지적했다. 이사장은 “소수 기업의 독주는 전세계적인 추세로 자본주의하에선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독점으로 굳어질수록 정부개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겠지만 선도기업 중심의 시장판도는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강운기자>kwoon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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