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차례상에 쓰려고 6일 인근 슈퍼마켓과 할인점에 장을 보러 나선 박정숙씨(55·서울 서초구 서초동)는 하나씩 살 때마다 세 번씩 한숨을 쉬었다. 결국 이날 사과와 배는 엄두가 안나 사지도 못하고 추석 연휴 전날 저녁에 ‘떨이’로 싸게 파는 것을 기다리기로 했다.
태풍이 지나가고 농산물 가격이 전반적으로 폭등한데다 이른 추석으로 햇과일 물량이 적은 것이 가장 큰 이유이지만 ‘납 꽃게’ 등이 나온 이후 중국산 수산물이 못 미더워 비싼 국산 상품을 사게 되면서 주부들의 부담이 더 늘었다. 박씨의 말대로 “추석 장 보려면 겁이 덜컥 나는” 실정이다.
▽태풍이 도둑〓지난달 말 태풍 프라피룬이 지나가기 전까지 농림부와 유통업체들은 농산물의 대풍작으로 추석 농산물이 비싸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었다. 그러나 태풍이 지나간 뒤열흘 사이 가격이 30%에서 많게는 7배까지 뛰어 주부들을 힘들게 만들고 있다.
해태유통 LG유통 한화유통 등 슈퍼마켓 3사가 지난달 27일과 6일의 가격을 비교한 결과 오이는 개당 250원에서 700원, 열무는 한 단 1000원에서 3500원으로 올랐고 호박은 개당 350원에서 2500원으로 7배 이상 값이 뛰었다. 한 단에 1900원이던 시금치는 2700원에, 1㎏에 1만4000원이던 표고버섯은 1만9800원에 거래됐다.
태풍으로 인한 농산물 가격 변동은 점차 안정돼 9월말경이면 제자리를 찾을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지만 추석 상차림을 위해서는 비싼 가격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이른 추석도 원망스러워〓추석이 예년보다 약 2주 빠른 것이 주부들에게는 전혀 반갑지 않다. 태풍으로 피해를 본 데다 차례상에 올려야 할 햇과일이 출하 시기가 일러 공급 물량이 턱없이 달리기 때문. 올해 사과와 배, 밤은 말 그대로 ‘금값’이다.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 경락가격 기준으로 밤은 지난해 추석을 앞두고 40㎏에 약 6만원이던 것이 올해는 6일 11만원으로 뛰었고 사과(홍로)는 15㎏이 약 3만8000원에서 6만5000원으로 올랐다. 해태유통은 신고배 15㎏을 지난해 추석에는 6만8000원에 살 수 있었으나 올해는 8만∼9만원으로 올랐다고 밝혔다.
▽중국산을 사자니 불안하고, 국산은 비싸고〓중국산 납 꽃게 등 중국산 상품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면서 주부들도 고민에 빠졌다. 중국산 어류를 사려니 불안하고 국산을 사려니 가격이 훨씬 비싸기 때문. 슈퍼마켓과 할인점 등은 참조기 병어 갈치 등 중국산을 들여오던 품목을 최근 국산으로 대체했으며 고사리도 중국산에서 북한산으로 바꾸고 있다. 중국산 참조기가 마리당 5000원선, 갈치가 6000원선인데 비해 국산은 참조기 1만3000원선, 갈치 1만원선이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 이선자씨(59)는 “평소에는 값싼 것을 사지만 차례상에 올리고 또 오랜만에 친척이 다 모이는 때라 비싸지만 국산을 구입했다”며 “가격 차가 커 고민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고 말했다.
<김승진기자>sarafi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