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선 회계사들은 “대우사태에 휘말린 산동회계법인 등이 큰 타격을 피하기 어렵지만 이번 기회가 회계감사기관의 근본적인 독립성 회복의 계기가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회계 조작수법〓㈜대우 홍콩법인은 97년부터 홍콩내 유럽계 은행지점을 통해 50억∼100억원 규모를 대출받았다. 대출된 자금은 기존 대출금의 이자, 대우자동차 폴란드법인 등 계열사 손실금 지원, 해외사업 투자 등에 사용됐다. 그러나 97 회계연도의 ㈜대우 회계장부 어디에도 ‘돈 빌린 흔적’은 보이지 않아 부채가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처리됐다.
대우자동차는 98년 초 동유럽 해외투자법인에 자동차 제조설비를 수출하면서 계약에 따라 받은 선수금을 ‘㈜대우에 제공한 설계도면의 대가’로 허위기재했다. 매출이 과대평가된 것이다.
존재하지도 않는 자산을 회계장부에 슬쩍 기록한 경우도 적발됐다. 대우자동차는 생산에 투입된 만큼 비용 처리해야 할 원재료계정을 조작했다. 이미 원재료는 이미 사용됐지만 장부상에는 창고안에 보관중인 재고로 기록돼 재고자산이 풍부한 것으로 위장했다.
▽회계법인의 장래〓금융감독원의 ‘12개월 업무정지 건의’ 처분을 받은 산동이나 경징계조치된 안진 안건회계법인은 위기에 몰려 있다. 당국의 징계도 징계지만 대우그룹 주식을 샀다가 주가폭락으로 피해를 본 주주들의 ‘소송 사태’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윤모씨 등 소액주주들은 이미 인터넷 홈페이지까지 만들어 민사소송의 원고를 모으고 있다.
91년 이후 투자자들이 “부실회계자료 때문에 피해를 봤다”며 회계법인이나 회계사를 상대로 낸 소송은 모두 4건. 소송 결과도 ‘3승 1패’로 주주가 유리하다. 최근에는 법원도 ‘장부 조작’의 폐해를 적극 인정하는 판례를 내고 있다. 외국의 경우 부실감사로 인한 소송에서 패소하면 그 회계법인은 ‘징벌적 배상(punitive punishment)’ 원칙에 따라 막대한 배상금을 물어주고 있다.
▽개선방안〓안건회계법인의 K회계사는 “회계조작은 3박자가 맞아떨어져 가능했다”고 지적했다. 실적 부풀리기에 급급한 대주주, 좋은 재무제표를 요구하는 금융기관, 세금만 많이 내면 세무조사도 면제해 주는 감독당국이 주역이 됐다는 것이다.
결국 대안은 감사계약 연장과 감사보수에 코가 꿰어 기업에 대해 약자 입장에 설 수밖에 없는 회계법인의 독립성 보장으로 모아진다.
기업이 정당한 이유없이 감사인(회계법인)을 바꿀 경우 해임된 감사인의 반론권을 인정하고 ‘왜 바뀌었는지’ 이유가 감사보고서에 반영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산동회계법인측이 “감사가 몰리는 12월말에 어떻게 거대 그룹의 회계부실을 찾아내느냐”는 항변에 비춰볼 때 외부감사 대상법인의 결산월을 분산시키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공인회계사가 지분 0.01% 미만을 갖고 있을 경우 그 기업의 회계감사를 맡을 수 있도록 허용한 제도도 바뀌어야 할 조항으로 지목되고 있다.
원정연 한양대 교수(경영학부)는 “이번 대우그룹 부실회계 적발사건은 회계실무자들이 오너나 경영진의 분식회계 압력에 ‘노’라고 말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승련기자>srkim@donga.com
▼부실 회계감사 조사 뒷얘기▼
대우그룹 부실 회계감사 조사는 지난해 11월 ‘대우그룹 자기자본이 장부에 적힌 것보다 43조원이나 모자란다’는 채권은행단의 의문제기에서 시작됐다.
작년말부터 금융감독원 특별감리반원 26명이 동원돼 10만쪽이 넘는 회계장부 및 관련자 100여명과 씨름했다.
조사는 예정된 6월말을 3개월 이상 넘겨가며 난항을 거듭했다. 김우중(金宇中)회장은 귀국을 거부했고 대우 전현직 임원들은 ‘김우중 책임론’을 내세우며 발뺌했기 때문. 김회장도 올 초 측근을 통해 “구체적인 사안까지 일일이 보고받지 못했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구체적인 회계조작 규모(22조9000억원)나 핵심 사법처리 대상자가 흘러나왔지만 형사고발 대상범위와 회계법인 징계수위를 놓고 막바지 진통이 계속됐다. 결정기구인 증권선물위원회 내에서도 “회계관행을 바꿀 마지막 기회”라는 강경처벌론과 “처벌이 능사가 아니다”라는 현실론이 부딪쳤다. 이 때문에 1일로 예정됐던 최종 발표가 2주일이나 연기됐다.
12개월 영업정지 조치를 받은 산동회계법인의 반발도 거셌다.
산동회계법인 옥민석상무는 “대우그룹 김회장과 핵심임원이 공모해 처음부터 가짜 서류를 제시한 바람에 부실감사가 불가피했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배경에는 재벌 앞에 회계법인은 꼼짝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적당히 감사’가 관행처럼 된 것을 감독원도 오래전부터 알고 있지 않았느냐는 항변도 담겨 있다.
계열사 대우주장 자기자본 금감원 실사결과 실사차이 분식회계 ㈜대우 2.6 -17.4 20.0 14.6 대우자동차 5.1 -6.1 11.2 3.2 대우중공업 3.1 1.0 2.1 2.1 대우전자 0.7 -3.0 3.7 2.0 대우통신 0.3 -0.9 1.2 0.6 기타 7사 포함총계 14.3 -28.6 42.9 22.9
<김승련기자>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