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장관 긴급회의]유가 안이한 대응 자책

  • 입력 2000년 9월 16일 18시 46분


“이걸로는 안돼. 다른 대책을 찾아봐. 있는 것 없는 것 다 만들어…”(신국환·辛國煥 산업자원부 장관)

16일 긴급히 열린 경제장관 감담회에서는 고유가 사태가 최대 이슈였다. 경제장관들은 그동안 유가 주무부처인 산자부에서 내놓은 대책이 너무 낙관적이었다는 ‘비판성’ 의견을 서슴없이 제기했다. 신장관은 이날 회의도중 간담회장을 빠져나와 에너지 담당국장을 황급히 찾아 ‘전혀 다른 새로운 대책’을 강력히 주문했다.

정부는 이날 에너지문제뿐만 아니라 포드의 대우차 인수포기 파장, 금융시장불안 등에 대해 서서히 현실을 인식하는 모습이었다. 그동안의 안이한 대응에 대한 자책도 뒤따랐다. 하지만 이날 제시된 대안도 위기를 타개할 ‘근본 처방’으로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 추락하는 증시에 대한 대책도 마련하지 못했다.

▽안일한 유가대책 질타〓산자부는 이날 오후 4시 장관 주재로 에너지대책 회의를 열고 3차 오일쇼크를 가정한 비상대책을 짜내기로 했다. 신장관이 회의중 자리를 나와 휴대전화로 담당국장을 찾아 긴급회의를 열도록 지시할 만큼 이날 분위기는 비장감이 감돌았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산자부가 상황판단을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이근경 재경부 차관보는 “올해 도입한 원유의 평균 가격은 배럴당 26∼27달러선으로 예상된다”며 “내년 2분기부터 유가가 안정될 것으로 보고 있지만 예기치 못한 상태까지 고려하겠다는 게 정부의 생각”이라고 밝혔다.

▽10조원 채권펀드 카드 또 꺼내〓고유가와 주가폭락 등으로 기업들의 자금사정은 더욱 어려워졌다. 당장 신용도가 낮은 중소기업들은 하루하루를 근근이 연명할 정도로 자금줄이 어렵다. 정부는 10조원 채권형펀드 카드를 ‘전가의 보도(寶刀)’처럼 또 내놓았다. 지난번 발표한 10조원 어치의 1차 채권형펀드는 지금까지 5조5000억원이 조성됐는데 이것도 이달중으로 10조원을 채우겠다는 것. 이두형(李斗珩) 금융감독위원회 조정총괄담당관은 “1차 펀드는 은행 등 금융기관 중심으로 마련됐기 때문에 2차 펀드는 자금사정이 나은 다른 기관들이 매입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2차 펀드는 연기금을 중심으로 조성할 방침인데 쉽게 돈이 모아질지는 불투명한 상황. 정부는 2차 채권펀드 조성과 별도로 중소기업에 대한 신용보증 여력을 확대하는 방안도 내놓을 계획이다.

▽증시대책은 ‘시장이 너무 몰라준다’ 일관〓주가폭락에는 단기처방이 없다는 점을 확인했다. 회의에 참석했던 관계자는 “최근의 주가폭락은 기업의 내재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고 지금까지의 구조조정 성과를 외면한 것”이라며 “기업과 금융구조조정을 빨리 추진하고 대우자동차 매각 작업이 신속히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단순한 시장 수급불안이 아닌 ‘증시태풍’을 일시 대책으로 처방하기가 어렵다는 현실론에 따른 것이다.

▽실효성 있을까〓고유가 비상대책을 새로 만드는 것은 지금까지의 ‘무대책이 대책’이라는 소극적인 입장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다만 어떤 대책이 선보일지는 아직 미지수. 자금시장 대책은 ‘상황이 아주 어렵다’는 것을 확인해 준 정도에 그친다. 금감위 고위 관계자는 “전날 밤늦게까지 작업을 했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뾰족한 대책을 찾기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당장 월요일 열리는 시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지가 관심이다.

<최영해기자>moneycho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