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차협상 정부가 걸림돌?…채권단"국제입찰 수순 무시"

  • 입력 2000년 9월 23일 19시 23분


책임있는 당국자들의 성급한 발언이 오히려 대우차 매각협상 진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로서는 하루라도 빨리 대책을 내놔 일을 진전시키는 것이 당연하지만 무르익지도 않은 구상을 최종 방침인 것처럼 밝힘으로써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더구나 ‘한달내 매각’이라는 비현실적인 원칙을 세워놓은 정부가 23일 채권금융기관들에 “10월내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달라”고 종용, “졸속매각을 자초하고 있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채권단과 대우구조조정협의회에 따르면 현재 대우차 매각 추진 당국은 19일 GM 피아트 컨소시엄과 현대 다임러크라이슬러 컨소시엄에 각각 매각협상에 참여할 뜻이 있는지, 있다면 어떤 조건인지 여부를 물어둔 상태다. 대우차 문제는 현재 이들 컨소시엄의 답변을 바탕으로 매각방법과 절차 등에 관한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말하자면 매각의 범위와 일정조차 아직 정해지지 않은 초보단계인 것이다.

그런데도 고위 당국자들은 이와 관련한 발언을 쉴새없이 쏟아내고 있다. 15일 포드가 대우차 인수포기를 선언한 이후 당국은“정밀실사는 필요없다” “현대측과 GM은 열흘 이내에 최종 인수제안서를 채권단에 제출하게 될 것이다” “한 달 이내에 인수자를 선정하겠다”며 인수업체의 의사를 고려하지 않은 채 잇달아 발표를 해버렸다. 이후에도 “일괄매각이 원칙이다” “분할매각도 고려할 수 있다”는 발언이 나왔고“일정 조건을 붙이는 ‘바인딩협상’을 진행하겠다”는 말까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진념(陳稔)재경부장관과 이근영(李瑾榮)금감위원장엄낙용(嚴洛鎔)산은총재를 통해 나온 이같은 발언들은 하나같이 부처간 의견조율없이, 상대방의 의중도 전혀 파악하지 않은 채 쏟아졌다.

일괄매각, 분할매각은 애초부터 당국이 나설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포드와 협상할 때도 포드측이 일부 국내 법인과 해외공장에 대해 난색을 표했으며 이를 전향적으로 검토하기로 했었다”며 “대우차의 국내외 모든 법인을 한 번에 살만한 업체는 없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분할매각이 ‘정답’도 아니다. 결과적으로 분할매각이 되더라도 현재로서는 사려는 업체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내용을 들어봐야할 단계라는 것이다. 바인딩 협상도 현재 상태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재계의 지적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정밀실사도 하지 않은 단계에서 어떤 업체가 구속력있는 협상을 진행할 것인가”라며 “국제 입찰 관행에서도 계약서에 사인하는 순간 구속력이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거의 ‘불가능한 조건’이 내세워지자 GM은 22일(현지시간 21일) “현 상태에서는 입찰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다임러측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같은날 산업은행 관계자는 “다음 주중 입찰 제안서를 보내겠다”고 말했다.

이필상 고려대 교수는 “자칫하다가는 대우차 매각이 제일은행처럼 인수자를 찾아주고도 돈을 계속 대줘야하는 식으로 전개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하임숙기자>arteme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