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예금 부분보장제 시행시기 "고민"

  • 입력 2000년 9월 27일 18시 44분


내년 1월부터 금융기관 파산시 예금자에게 원리금을 포함해 2000만원까지만 보호하기로 한 예금 부분보장제도를 당초 계획대로 시행할지를 놓고 정부가 크게 고심하고 있다.

정부는 극도로 불안한 금융시장 상황 등 경제여건이 여의치 않을 경우 예금보호 한도를 높이거나 시행시기를 늦추는 방안도 신중히 검토중이다.

예금 부분보장제도의 핵심은 내년 1월1일부터 은행 종금 신용금고 등 동일 금융기관의 금융거래자 한사람당 예금을 2000만원까지만 보호한다는 내용. 금융상품 가운데 은행의 외화예금 양도성예금증서(CD) 개발신탁, 증권사의 청약자예수금 등은 보호대상에서 제외된다.

시행시기는 내년으로 잡혀있지만 예금 부분보장제도는 새로 시행되는 것이 아니다. 정부는 1996년6월 이 제도를 도입했으나 외환위기 후인 97년11월 금융안정과 예금신뢰를 위해 전액보호제로 조정, 현재까지 왔다.

이 제도의 시행 여부가 최근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것은 시행시기가 불과 3개월 앞으로 다가온데다 금융시장이 불안에 빠지는 등 우리 경제 곳곳에 ‘빨간 불’이 켜진 상황에서 이 제도를 강행할 경우 금융시장에 미칠 충격이 예상외로 클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내년 1월부터 이 제도를 시행한다는 방침이 이미 98년7월 예고된 상황에서 이제 와서 보호한도나 시행여부를 재검토하는 것은 정책의 일관성을 떨어뜨리고 정부에 대한 불신만 키운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한양대 이상빈(李商彬)교수는 “일본도 당초 내년 4월 시행할 예정이었던 이 제도를 1년 연기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서둘 필요가 없다”며 “금융시장 불안이 해소된 이후로 늦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상당수 경제전문가들은 “내년에 금융소득종합과세와 외환자유화 확대가 예상된 상황에서 예금 부분보장제까지 실시되면 금융시장에 미칠 악영향은 치명적이 될 것”이라고까지 말한다.

반면 예금공사 전선애(田善愛)전문위원은 “예금보호한도를 3000만원으로 올리면 효과가 미미하고 5000만원 이상으로 올리면 예금자와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 방지라는 제도의 취지가 무색해진다”며 당초 계획대로 시행할 것을 촉구했다.주택은행 주영조(朱營祚)부행장도 “이미 예고된 정책인 만큼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며 시장에서의 자발적 금융구조조정을 통해 금융산업의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동조했다.

금융계에서는 이 제도가 시행될 경우 예금이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우량은행’들은 계획대로 실시할 것을 선호하는 반면 경쟁력이 약해 예금이탈 가능성이 높은 중소은행이나 제2금융권은 시행연기나 보호한도의 대폭확대를 촉구하고 있다.

이처럼 의견이 팽팽히 엇갈리면서 정부는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모습이다. 당초 이달말까지로 예정됐던 제도시행여부에 대한 방침을 다음달초로 늦춘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는 특히 내년부터 금융소득종합과세제도가 시행되고 외환자유화폭이 대폭 확대되어 정치 사회적 불안이 심화할 경우 자본유출이 일어날 것을 내심 우려하고 있다.

재정경제부는 현재 △시기와 보호한도를 당초 계획대로 시행하는 방안 △시행시기는 예정대로 내년 1월로 하되 1인당 보호한도를 상향조정하는 방안 △시행시기를 1년 가량 늦추는 방안 등 3가지 시나리오를 마련해 각 방안에 따르는 파장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경제팀 수장’인 진념(陳稔)재경부장관의 최근 몇가지 발언은 주목된다. 진장관은 25일 기자간담회에서 정부방침이 결정되지 않았음을 분명히 하면서도 “이 문제는 정책 일관성이라는 측면과 금융시장에 예상되는 파장 등을 종합적으로 점검해 신중히 결론을 내려야 하며 단순히 명분 때문에 무리하게 밀어붙일 경우 의약분업파문처럼 득보다 실이 많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진장관은 이에 앞서 동아일보와의 단독인터뷰에서도 금융시장 상황에 따라서는 보호한도나 시행시기를 조정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앞으로 정부가 최종결론을 어떻게 낼지 주목된다.

<권순활기자>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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